어제 백성들의 질문처럼 빌라도 역시 똑같은 질문을 하고 주님은 동일하게 답하신다. 빌라도가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다, 이냐)?’ 라고 말하자 주님은 ‘당신이 말하고 있다’ 라고 답하신다. 주님은 당신 자신에 대해 ‘에고 에이미’라고 하시면 말씀하신 적이 많지만, 내 기억으로는 한번도 당신 자신을 ‘유대인의 왕’이라고 말씀한 적은 없다. 다만 태어나실 때 부터 동방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있느뇨?’라고 물은 적은 있다.
그런데 빌라도는 왜 ‘당신은 유대인의 왕?’ 이라고 묻고 있을까? 22장에서 백성들은 주님께 그리스도인지, 혹은 하나님의 아들인지 물었지만 유대인의 왕인지는 묻지 않았다. 그리고 빌라도 앞에서 주님에 대해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는 자로 고소했다. 그렇다면 빌라도는 ‘당신이 정말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했는가?’ 라고 질문해야 하는데, 정작 ‘당신은 유대인의 왕인가’ 라고 질문하고 있다. 빌라도는 왜 이런 질문을 했을까?
아마도 유대지방을 다스리며 그 문화와 종교 그리고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계속 주시해야했던 사람으로 빌라도는 ‘그리스도’가 정치적인 독립을 꾀할 인물로 나타날 것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러한 면에서 그리스도는 ‘유대인의 왕’이 될 것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앞에 끌려온 인물은 그런 카리스마틱하고 권력을 꽤하는 인물과는 거리가 있다. 만일 유대인의 왕이냐는 빌라도의 질문에 주님께서 ‘맞다’ 혹은 ‘아니다’ 라고 답하셨다면 정치적인 의도를 가진 사람으로 생각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당신이 말하고 있다’라고 답하신다. 이러한 답에 빌라도는 이 인물은 전혀 정치적으로 위협이 될만한 인물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렇기에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라고 말한다.
주님께서 갈릴리 출신임을 듣고 빌라도는 (당시 방문차 예루살렘에 왔던? 아니면 잠시 있었던?) 헤롯에게 보냈는데,
(눅 3:1)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 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 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 왕으로,
정치적 알력이나 판이한 성격의 차이 등으로 인해 전에는 서로 무시하고 원수 혹은 적 같은 관계였던 빌라도와 헤롯이 주님의 일로 당일에 친구가 된다. 비교적 진지한 성격의 빌라도와 비열하고 저급한 성격의 헤롯이 이렇게 친구가 되는 것은 의아한 일인데, 예수님이라는 인물에 대한 심판권을 먼저 빌라도가 당시 갈릴리를 다스리던 헤롯에게 양보한 것이 아마도 헤롯에게는 자신을 인정해 주는 것으로 여겨졌나보다. 그래서 기분도 좋아지고 예수라는 평소에 궁금했던 인물도 만나서 자신을 즐겁게 해줄 기회로 삼으려고 했다. 하지만 주님께서 아무 대답도 않하시자 무시하고 조롱하며 다시 빌라도에게 보낸다. 빌라도 역시 이러한 범상한 인물인 예수님에 대해 다시 넘겨 받은 것을 헤롯이 자신을 인정하는 것으로 여겼을지 모르겠다. 만왕의 왕이신 주님께서 한낱 총독과 분봉왕의 노리개 처럼 취급받으신다…
오늘 구절에도 빌라도의 ‘당신은 유대인의 왕(이다, 이냐)’에 대한 물음에 주님은 ‘당신이 말하고 있다’라고 답하신다. 요한복음에는 빌라도가 이어 ‘그러면 당신은 왕이 아닌가’는 물음에 주님은 ‘당신은 내가 왕이라고 말한다 내가 이것 안으로 태어났다 그리고…’ 라고 답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