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악자 둘 중 하나가 예수님께 ‘주님, 당신의 왕국 안에 오실(능동태) 때 나를 기억하소서 (수동태, 행악자의 겸손의 표현 같음)’ 라고 말한다. 주님은 이에 대해 ‘내가 아멘으로 말하고 있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 안에 있을 것이다’ 라고 답하신다. 생명의 삶 해설에 ‘낙원 (문자적으로는 동산 혹은 정원)’에 대해 잘 설명했는데 고후 12:2,4에서 바울이 자신을 3인칭으로 말하며 이끌려 갔던 하늘의 낙원, 그리고 계시록 2:7에 이기는 자들에게 주시는 상으로 ‘낙원 가운데 있는 생명 나무의 열매를 먹게 하겠다’는 약속의 말씀에 나와서 이 구절을 포함 신약에 총 3번 등장한다. 그래서 이는 분명 구원을 의미한다.
‘행악자’ 라는 말처럼 이 둘은 악을 행하는 (카코+우르곤) 이들이었다. 주님 없는 인생은 죄인으로 태어나서 평생 악을 행하고 하나님과 관계 없는 삶을 살다가 죽는다. 하지만 인생의 마지막에 이 둘 중 하나는 주님을 의뢰했고 고백했다.
그런데 문제는 마태와 마가는 행악자 둘 모두 주님을 욕한 것으로 누가와는 다르게 기록한다는 것이다. 주님을 함께 욕하다가 주님의 메시야 되심을 깨닫고 그 중 하나가 회개했을까? 아니면 고백한 한 명 조차 나중에는 주님을 똑같이 욕했을까? 41절 내용으로 보아 그는 십자가에 달리기 전 부터 주님에 대해 알았던 (혹은 들었던) 것 같다. 또 마태 마가의 기록에 의하면 아버지 하나님께 조차 철저히 버림 받으셔야 했던 주님에 대해 고작 행악자 한 명이 주님을 인정한 것이 되면 뭔가 맞지 않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나중에는 그도 욕한 것이 되는데, 그러면 주님의 낙원에 대한 약속의 말씀은 계속 효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의 배반으로 그 약속은 취소될까?
성경에 사함 받을 수 없는 대표적인 죄로 성령 모독 (혹은 거역, 마 12:31 32, 막 3:29,눅 12:10)과 배교(히 6:4-6)가 있다. 성령을 거역하거나 모욕하는 것은 우리로 거듭나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요 3:5) 당연히 용서를 체험하지 못하고 구원받을 수 없다. 그런데 배교의 문제는 ‘잘 믿다’가 (혹은 잘 믿는 것 같이 보이다가) 주님을 배반하고 부인하는 것인데, 이러한 행위는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 (히 6:6)’ 즉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 자체를 거부함으로 무효화하는 선언을 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평생 교회 열심히 나오고 종교 생활을 하다가도 죽기 전에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선언을 한다거나 믿음의 고백을 하지 못한다면 그의 구원은 의심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 강도 중 하나는 구원 받은 것일까? 마지막에 욕했던 그는 과연 주님 약속하신 낙원에 주님과 함께 했을까? 롬 9:6에서 위안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라고 말씀하며 이스라엘의 교만과 불신이 있음에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몇을 구원하실 것을 말씀한다. 이것은 아무렇게나 살아도, 후에 주님을 배반해도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아니라, 구원은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에 의한 것임을 확인한다. 하지만 그의 구원은 죽기 바로 전에 받은 부끄러운 것으로 생각된다 (고전 3:15).
주님, 주님께 온전히 의지하지 못하고 믿음으로 살지 못하며 실패를 거듭하는 나이지만 다시 주님께 고백합니다. 오늘이 구원의 날입니다. 주께서 하신 말씀을 폐하지 않으심을 붙듭니다. 구원하심은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임을, 그래서 다시 붙잡을 수 있음을 믿습니다. 죽기 바로 전에 고백한 행악자 처럼 주님 앞에 내어 보일 것이 없는 구원보다는, 주님과 동행한 날들이 계수되는 구원, 지금 이루는 구원의 삶, 구원을 이루는 오늘 되게 더욱 은혜 베푸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