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0:31은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기록하며 요한이 복음서를 쓴 목적을 말한다. 누가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44절은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라고 말씀하며 구약 성경이 사실은 주님에 대해 기록한 것이며 46-47절은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음을 말씀한다. 구약에서 이러한 내용이 분명하게 나오는 것도 있지만 보석처럼 숨어서 박혀 있는 부분들도 있기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셨다 (45절).
지난 22장에는 주님의 만찬이 있었고, 16절은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한다. 그리고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있고, 엠마오 마을로 가던 두 제자와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셨다. 물론 이 때는 포도나무에서 난 것은 마시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처럼 (마 26:29, 막 14:25, 눅 22:18) 포도주를 마셨다는 기록은 없고, 또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도 포도주는 거부하신 것으로 기록한다 (마 27:34, 막 15:23). 하지만 요한복음 19:30에는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라고 기록한다. 찾아보니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받으신 것은 ‘신 포도주’가 아니라 원어로는 ‘옥소스’로 ‘식초’라는 단어다.
아무튼 궁금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는 오신 것인가 아니면 아직 오지 않은 것인가? 과연 주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이루어진 것인가? 아니면 후에 이루어질 것인가? 22장 16절을 원어에서 직역한다면 ‘나는 너희들에게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왕국 안에서 그것이 이루는 때까지 결단코 (우케티 우 메) 그 밖으로 나는 먹지 않다 (아오리스트)’ 정도가 되겠다. ‘그것이’와 ‘그 밖으로’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이 구절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만일 ‘그것’이 ‘유월절’이라면 주님 재림 때가 또 다시 달력으로 유월절 정도가 된다는 말씀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주님의 죽으심이 참된 유월절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면 조금 이해는 된다. 유월절을 위해 양은 죽임을 당해야 한다. 그리고 백성은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무교병과 양을 먹음으로 사망은 ‘뛰어 넘 (유월)’는다. 구속을 받는다.
주님께서 일부러 에마오로 향하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해 주시고 떡을 떼어 주신 것은 주님 오심으로 그 왕국은 이미 왔으며, 주님의 죽으심을 통해 다 이루었으며, 동시에 앞으로 그 왕국은 온전히 도래할 것임을 보여준다. 크로노스 안에서는 그 실재가 온전히 보기는 힘들어도 카이로스 안에서는 이미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과 승천하심으로 하나님의 왕국은 임했다.
그래서 제자들은 그 왕국을 살며, 주님의 그리스도 이심을 증거하는 증인이 되고 있다 (48절). ‘증인들’이라는 단어는 원어로 ‘마르투레스’인데, ‘순교자’를 의미하는 영어 martyr의 어원이다. 증인은 본 것을 보지 못했다고 부인할 수 없고, 체험한 것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에 순교까지 그 증거를 지킨다.
재미있는 것은 49절에 주님께서 제자들을 증인으로 ‘보내고 있다 (현재진행형)’ 라고 하시지만 동시에 하시는 명령은 ‘기다리라 (앉아 있다, 머물다, 아오리스트 시제)’ 이다. 이는 누가복음 후속편을 예고하는 것이고, 후에 누가는 사도행전을 기록한다. 주님의 승천이 있고 제자들은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간다.
이상한 것은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고 누가복음은 끝나는 것이다.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 더우기 승천하심을 통해서 이제는 더 이상 물리적 성전은 의미가 없게 되었다. 사실 원래 헤롯 성전은 번듯한 겉모습에 비해 그 지성소 안에 있어야 할 성물들은 없는 속 빈 성전이었다. 그런데도 제자들은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성전’을 의미하는 단어가 둘 있는데, 하나는 오늘 말씀의 ‘히에론’이라는 단어고 다른 하나는 ‘나오스’라는 단어이다. 고전 3장 16절에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할 때는 ‘나오스’라는 단어가 쓰였는데, 원래 이 단어는 지성소를 포함한 ‘성소’이다. 즉 제사장들만 들어갈 수 있는 장소이며 주의 임재하심이 있는 지성소가 숨겨진 매우 비밀스러운 곳이다. 이에 비해 ‘히에론’은 성소는 물론이고 성전 마당과 뜰 등 성전 전체를 가리키며, 제자들이 늘 이 ‘히에론’에서 하나님을 찬송했다고 말한다.
바울은 엡 2:20-22에서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라고 기록하며 우리가 연합하며 서로 세울 때 바로 하나님을 모시는 성소로 지어져 감을 말씀한다. 제자들이 그렇게 머물며 기도할 때 오순절이 이르고 능력의 성령으로 입힘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는 그의 제2 복음서를 다시 쓰게 된다. 사도행전에서는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했다는 기록은 없고 마가의 집 위층 홀에서 모여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고 기록한다 (행 1:14)
주님, 누가의 증거가 계속되어 후속으로 연결됨을 봅니다. 복음은 이미 이루어졌지만 우리 현실의 삶에서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현재 진행형임을 압니다. 이 복음을 살아야겠고, 증인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필요한 성령이 위로 입히시며 능력으로 채우소서. 능력은 주님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