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서도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 이러므로.. (11-12)

아브라함 링컨은 ‘나는 하나님이 내 편에 있다는 것은 의심하지 않는데. 그러나 내가 하나님 편에 서 있나 그것이 염려된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주님께서는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하리라’고 분명 약속하셨기에 그 점에 대해서는 의심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내가 혹은 우리가 주님과 함께 하는가, 그와 동행하는가에 대해서는 선뜻 답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죄와 주님은 함께할 수 없다.  내가 온전히 죄를 떠나야 주님과 나는 그 안에 또 내 안에 함께 거한다.

 

신약 경륜으로 돌아가기 (미가 4:1-5)

오늘 말씀은 어렵다.  이것을 생명의 삶 해설처럼 그리스도와 복음에 연결시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엄밀히 말해 신약 경륜과는 빗나가는 말씀이다.  문자적으로 이해해야 하는지 아니면 상징적으로 이해해야 하는지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그리스도와 교회로 연결시키기가 참으로 어렵다.  그 이유는 ‘여호와의 산’과 ‘율법’이라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예배하는 자가 ‘영 안에서 그리고 참 (진리) 안에서 예배 ( 4:23)’ 해야함을 말씀하셨다. 또한 성경은 복음이 우리를 율법에서 해방했음을 분명히 한다 ( 8).  더우기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 4:21)’ 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를’ 필요는 없다.  성도인 우리 안에 성령께서 거하시고, 우리가 밟는 모든 땅은 성지가 되기 때문이다. 

또 하나 문제가 되는 부분은 생명의 삶 해설인데, ‘하나님의 말씀이 교회의 터와 기둥입니다’ 라고 했지만 성경은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딤전 3:15)’ 고 말씀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물론 모든 것의 척도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교회의 터와 기둥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 자체가 진리의 기둥과 터이다.  2절의 ‘야곱의 하나님의 전’이라고 되어 있는 부분에서 ‘전’은 ‘집’과 같은 단어다.  즉 ‘야곱의 하나님의 집’인데, 구약에서는 야곱의 하나님의 집이 부각되지만, 신약에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집’ 즉 ‘하나님의 교회’ 곧 ‘진리의 기둥과 터’를 말씀한다.

그렇다면 이 부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분명 ‘마지막 날들’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주님 오시기 전에 이러한 일은 일어날 것으로 본다.  하나님 말씀은 하나도 떨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절의 이러한 장면과 그 유효함은 잠시 동안일 것이다.  다만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영원히 행’할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들은 그 이름이 ‘구원하시는 여호와’ 즉 ‘예슈아’임을 알것이다.

주님, 주께서 온전히 다스리시는 그 날을 소망합니다.  오셔서 심판하시고 영원히 다스리실 것을 믿습니다.  오늘도 그 임재하심과 다스리심이 우리 삶 가운데 나타나시옵소서.  나의 가는 곳, 밟는 땅이 성지가 되도록 우리 안에 주의 집을 만들게 하시고 진리의 기둥과 터인 주님의 교회를 더욱 알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