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은 선뜻 이해하기 쉽지 않다.  히브리 고어체로 기록된 것을 (아마도 영어 번역본을 참고하고) 다시 한글 고어체로 옮겼기 때문에 유명한 구절인 2절을 제외하고는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영어 킹제임스나 한글 킹제임스를 봐도 무슨 말인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 ‘그녀’ ‘너희’ 등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 헷갈린다.  그래서 현대어로 번역된 번역본들 즉 ‘우리말 성경’ ‘공동번역’ ‘가톨릭성경’ ‘쉬운성경’ ‘현대인의 성경’ 등이 조금 더 이해가 쉽다.  결국 여호와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보내시고 그가 주위 강대국을 치시고 벌하시며 보복하심으로 이스라엘과 세계에 평화를 가져 오신다는 메시지다.

 

미가서는 7장 밖에 되지 않는 소위 ‘소선지서’ 중에 하나지만 메시야를, 특히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하기 때문에 위대한 선지서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단지 그 민족을 주위 국가들로부터 구원하는 내용으로 들릴 수 있지만 4절의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치리라’는 구절은 온 세상에 미치는 메시야의 평화와 구원을 선포한다. 

 

7-8절은 흥미로운데, 지난 2천년 동안 땅을 잃고 전 세계에 흩어져서 천대받으며 살던 유대인들이 이제는 막강한 세력으로 군림한 것을 본다.  유대인들은 각 세대마다 여러 모양의 고통을 받았지만 그러한 고통을 딪고 이제는 세계 정치 및 경제 문화 각 부분에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여러 업적을 남긴 이들을 보면 ‘얘도 유대인이야?’하며 놀라게 된다.  그들은 인류에게 큰 공헌을 했다.  물론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이들도 있겠지만 (대표적으로 칼마르크스?), 현재 우리가 누리는 많은 것들이 이들로 부터 왔다.

 

그런데 이제 신약으로 넘어와서 바울은 이러한 ‘남은 자’ 혹은 택함 받은 참된 ‘유대인’은 믿음에 의한 은혜로 구원받는 우리라고 말씀한다.  2:29은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고 말씀하고, 9:27은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 라고, 24절은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11:5에는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고 기록한다. 

 

주님,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참된 남은 자 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이라고, 택함받지 못했다고 실망하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이면적 유대인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우리는 참으로 왕족이며 제사장들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