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는 숫자에 관계된 것이지만 각 장 마다 모두 ‘여호와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로 시작된다. 즉 이러한 모든 계수는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것이고 모세와 아론은 그 말씀에 복종한다. 그래서 계수함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관계를 보여주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작한다.
이러한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궁극적으로 복을 주시고 복이 되시며 또 그들로 서로에게 또한 이방 가운데 복이 되기 원하신다. 이 복은 여러 물질 혹은 건강 그리고 안전 등도 포함하지만 결국에는 평강 즉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이고 이웃과의 평안함이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심 그리고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심으로 가능하다. 하나님께서 나를 주목하시고 사랑하시며 인정하신다는 것을 확신하다면, 또 어떠한 것도 우리를 그의 사랑으로부터 끊을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안다면 그것은 가장 큰 복이다.
24-26절의 여호와께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명하신 축복의 말씀은 당시 단 한번의 선포로 끝난 것은 아닌 것 같다. 단지 아론에게만이 아니라 그의 아들들에게 명하신 것은 대대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포해야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선포는 구약에서는 제사장들에게 주어진 일방적인 선포였는데, 요즘도 예배 후에 행해지는 축도 역시 일방적인 것으로 이해된다. 즉 목회자가 성도들에게 복을 비는 (축복) 기도를 하는 것인데, 사실 신약의 축복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적이다.
대학시절 코스타메사의 갈보리채플에 참석했다가 예배를 마치며 척스미스 목사님이 이 말씀으로 만든 노래로 축도를 대신한 것을 보았다. 즉 목사님 뿐만 아니라 성도들 역시 함께 불렀는데, 이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제는 주님의 복이 구약 제사장들을 통해서만 흐르지 않는다. 믿는 모든 이들이 왕족이요 제사장이기 때문이다.
본문과 비슷한 내용이 신약에는 고후 13:11 에 나오는데,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하게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하며 평안할지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고 말씀한다.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는 것과 ‘마음을 같이하며’ ‘서로 문안’함이 함께 간다. 우리는 주의 이름 안에서 서로를 축복하고 또 서로에게 복이 된다. 엡 5:19은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라고 하는데,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은 원래 하나님과 그의 영광만을 위한 것이지만, 이것들로 ‘서로 화답하’라고 말씀한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지만 또한 우리 가운데 거하시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참된 복이 되신 주님, 우리도 서로에게 복이 되기 원합니다. 말로 상처를 주고 헐뜯는 저를 봅니다. 주님의 사랑이 내 안에 풍성히 거하셔야 하겠습니다. 주의 사랑으로 충만케 하시고 넘치게 하소서.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우리를 부르신 주님께서 오늘 우리로 복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