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모세에게 아내가 많았을거라고 생각했었다.  오래전 나눔에서도 모세에게 복수의 아내들이 있었다고 언급했었는데 오늘 말씀이 그 이유였다.  그런데 몇 가지 정황을 보니 모세에게는 아내가 십보라 단 하나였고 바로 오늘 말씀의 구스 여인이다.

모세는 매우 특별한 인물이다.  엘리야도 사무엘도 다윗도 솔로몬도 매우 특출난 인물들이지만 모세는 정말이지 대단한 인물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대면하여’ 말하고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는 사람이었다.  더우기 권위의식이라고는 없는, 오히려 그에게 맡겨진 권위에 대해 항상 버겁게 여기는, 그래서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한 사람이었다 (민수기는 모세가 기록한 것인데 자신에 대해 그렇게 쓴 것 또한 특이하다.  후세에 추가되었을까?)

18:2에는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모세가 돌려 보냈던 그의 아내 십보라와’ 다시 모세를 만나러 온 사건을 기록한다.  모세가 출애굽할 당시 그는 아내와 함께 있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광야 생활을 하는 중에 장인 이드로가 아내와 아들들을 데리고 온다.  이것이 바로 오늘 말씀의 배경 같다.  원래 아내 외에 따로 구스 여인을 취했기 때문에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한 것이 아니라 단지 십보라가 이스라엘 사람 아닌 이방인임에 대해 추긍을 한 것이다.  이것은 어떤 면으로 이해는 간다.  모세는 하나님의 율법을 말하면서 이방인과의 혼인에 대해 금했다.  더우기 민족의 지도자로서 히브리 말에도 익숙하지 않은 구스 여인 십보라가 도중에 합류하는 것이 매우 달갑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 속에는 숨겨진 다른 의도가 있었는데 결국은 ‘교만’이다.  이것을 굳이 권위에 대한 도전이라고 풀이할 필요는 없다.  하와와 아담이 선악 지식 열매를 먹은 것을 보면 어차피 교만은 죄의 시작이고 또한 그 나타남이다.

분명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에게만 말씀하지 않고 미리암과 아론에게는 물론 하나님의 백성 그 누구에게도 말씀하신다.  하지만 말하는 것이 서툴렀던 (아마도 더듬었거나 히브리 발음이 어눌했던?) 모세를 대신 해서 아론이 말했던 것을 보면 아론은 거기에 대해서도 교만이 싹트고 있었는지 모른다.  (영화 '십계' 같이 모세가 멋지게 명령하는 모습은 없었을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가끔 몇몇 교역자들이 무조건 (자신의) 권위에 복종하라고 이 구절을 인용하는 것인데, 신약 시대 혹은 교회 시대에는 모세같은 지도자가 필요없다.  만일 모세 같은 권위를 갖기 원한다면 먼저 그의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대면해서 말씀하실만한 인물이어야 한다. 

주님, 우리에게 아들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심을 감사합니다.  주님을 주인으로, 지도자로, 왕으로 섬기며 우리는 모두 형제들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공동체 안에서 서로 복종하며 겸손을 배우게 하시고 권위 보다는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변화받는 본래의 인성, 그리스도를 닮은 인성을 서로 나타내게 하소서.  우리 안에 숨긴 교만을 심판하시고 치시고 처리하소서.  교만이 올라올 때 마다 주의 은혜와 온유함으로 덮으소서.  주님이 더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