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는 정탐꾼들을 뽑을 때 소위 ‘긍정적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을 뽑을 것이지 하필이면 대부분 믿음 없고 마음 약한 사람들이 뽑혔다. 그런데 어제 말씀 2절에는 ‘각 지파 중에서 지휘관 된 자 한 사람씩 보내’어 진 것을 알 수 있다. 즉 모세가 '목적 달성'을 위해 특별히 (자기) 사람들로 뽑은 것이 아니라 이미 백성들에 의해 선출되어진 각 지휘관들을 보냈다. 이것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대부분이 여호와의 많은 기적을 경험하고도 믿음이 없었음을 볼 수 있다. 그러고 보니 기적을 경험하는 것이 꼭 믿음과 정비례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기억’하는 것이고 그러한 기억이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지속하게 한다 (아니면 하나님께서 계속 함께 하심을 깨닫게 한다).
그 땅이 좋은 것에 대해서는 정탐꾼들 모두 인정했다. 하지만 여러 현실적인 이유들을 들어 점령하지 못할 것이라고 보고한다. 유일하게 갈렙만이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고 말한다. 갈렙은 뭘 믿고 이런 말을 한 것일까? 소위 ‘잘 될거야 잘 될거야’ 라고 자기 최면을 하는 ‘긍정적 사고방식’은 아니다. 결국은 여호와를 경외함에 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소극적인 면에서는 고난을 인내할 수 있고 적극적인 면에서는 대적들과 싸워 이길 수 있다.
생명의 삶 해설에는 ‘메뚜기 콤플렉스’라는 말이 나온다. 가나안 땅 백성들의 장대함에 비해 자신들은 메뚜기 같다는 지나친 겸손(?)의 말이다. 그들의 말이 정말 맞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갈렙의 말을 다시 보면 ‘우리가 곧 올라가서’ 라고 한 것을 볼 수 있다. 갈렙은 ‘내가 올라가서’ 라고 하지 않았다. 메뚜기 한 마리는 정말 보잘 것 없는 한낱 미물에 불과하지만 메뚜기들이 떼가 되어 한번 휩쓸고 지나가면 남는 것이 없게 된다. 그래서 애굽의 십대 재앙 중 하나가 메뚜기 떼의 재앙이다.
바울은 고전 1:26에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라고 말한다. 초대 교회에도 후에 ‘귀부인들’과 ‘부자’들이 들어왔지만 대부분 성도들은 특출난 이들이 아니었다. 하나 하나 보면 과연 메뚜기 같았다. 하지만 그러한 이들로 인해 후에 로마는 영적으로 전복된 것을 역사는 증언한다.
계시록 3:8에는 빌라델비아 교회에 대해 주님께서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라고 말씀한다. 빌라델비아교회는 세상적인 관점으로는 아마도 메뚜기 같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주님의 말씀을 지키며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다. 능력의 목적은 세상적인 관점에서 어떤 위대한 일을 해내는 것 보다 악한 때를 견디며 주님의 말씀을 지키며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는 것이고, 그것이 결국 세상을 이기고 또한 무엇보다 위대한 것이다.
주님, 인간의 능력은 메뚜기 같고 주님의 의를 이루거나 주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함을 압니다. 우리가 가진 능력이 작은 것이라도 주님 주신 능력이라면 능히 이기리라는 말씀을 붙잡습니다. 나 하나는 메뚜기일지라도 주님의 몸된 교회로 설 때 주의 능력이 역사하실 줄 믿습니다. 주님의 영광만 나타나시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