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13장이 소위 사랑장, 그리고 히 11장이 소위 믿음장이라고 하는데, 민수기 14장은 우울장 같다. 모든 내용이 우울하다. 마치 창세기 3장에서 선악지식의 나무 열매를 먹은 후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며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19절)’ 고 말씀하신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 개인적으로 제일 싫어하는 성경 말씀은 마귀가 한 말이나 율법의 버거운 요구 등이 아니라 바로 위의 창세기 3:19절 말씀인데, 이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모든 계획하심이 수포로 돌아가게 하는 듯 들리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스라엘 백성은 그냥 앉아서 당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노예 생활이지만 나름대로 평범한 재미를 누리며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옛날 궁궐 출신에 더우기 외국 생활을 오래해서 말도 어눌한 80세 노인이 등장하더니 자신들을 출애굽 시켜서 좋은 땅으로 인도하겠다며 여러 기적을 행한다. 그래서 따라 나왔더니 정작 그 좋은 땅은 들어가기 너무 힘들어 보인다. 그들은 울고 슬퍼하고 노여워하며 불평하고 우울해 했다. 목적이 무엇인지 잘 몰랐기 때문이다… 목적의식이 불분명할 때 그들의 삶은 40년 동안 광야에서 유리하는 생활이 된다.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느낄 때 갈등한다. 그리고 이것이 반복되어 습득되면 삶의 목적을 잃고 우울해진다. 하지만 동시에 그러한 실존적인 한계를 경험함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바라볼 수 있다면, 그리고 원래 하나님의 목적이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 (렘29:11)’이라는 말씀을 깨닫고 믿게 된다면 우울한 상황에서도 소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특히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힘든 역사를 끌어 오신 것은 언뜻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렇게 단계적으로 다른 방법으로 인류의 역사를 인도하셨는지, 더우기 좋은 땅인 가나안 역시 참된 안식이 아니었음을 이제는 아는데, 민수기는 왜 이리도 모든 목적이 이 땅에 속한 ‘좋은 땅’ 같아 보이게 하는지…
히브리서 11장 39-40절은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기록한다. 믿음이 없어 좋은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던 이스라엘 백성은 고사하고 믿음을 따라 행했던 이들 조차도 증거는 받았지만 약속된 것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그리스도께서 오시고 성령이 부어지시고 교회가 시작되며 그리스도의 신부가 예비되어 영원한 하나님의 왕국이 시작되는 것이 ‘우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말씀한다. 믿음의 선배들의 삶이 마지막 시대 우리들을 통해 그 온전함이 이루어 진다.
주님, 평생 믿음을 따라 세상적 관점으로는 힘든 삶을 살았던 믿음의 선배들의 삶이 오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믿음을 통해 온전해 짐을 봅니다. 민수기 14장은 우울하지만 그 가운에서도 주의 거룩하심과 전능하심을 통해 주님의 영원하신 계획이 이루어짐을 믿습니다. 여러 상황에서, 특히 신앙 생활에서 우울해질 때, 또 하나님을 바라보기 힘들어 질 때, 주님 도우셔서 주의 거룩하심과 영원하심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하시며 과연 우리를 위해 계획하신 그 목적이 어떠함을 우리 가운데 새롭게 하여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