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중에 죄를 지었을 경우 속죄 제사에 대한 말씀이다.  24절의 ‘부지중에’는 원어로는 ‘지식이 없어 알지 못하여’로 되어 있다.  즉 알지 못하는 것은 지식이 없기 때문인데, 만일 알고도 죄를 짓는 이들에 대한 속죄 방법은 적어도 15장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만일 ‘고의로 무엇을 범하면 누구나 여호와를 비방하는 자’가 되고, 그러한 사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멸시하고 그의 명령을 파괴였은즉 그의 죄악이 자기에게로 돌아가서 온전히 끊어’진다고 말씀하기 때문이다 (30, 31).  무서운 말씀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얼마나 알고도 악을 행하는가?

지식의 문제는 창세기 2장에서 선악 지식의 나무 (tree of knowledge of good and evil) 를 먹을 때 부터 생긴다.  문제는 이 나무가 ‘선 혹은 악’이 아니라 ‘선과 악’ 둘 모두를 가진 지식의 나무이고, 먹음으로써 아담 안으로 들어왔는데, 그 때부터 인간은 독립적인 판단을 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으로부터 독립 혹은 분리되었다.  그래서 내가 뭔가 안다는 것은 독단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에 대해 바울은 고전 8:1에 우상의 제물에 대해 설명하면서, 말씀에 기록된 우상의 제물에 대한 내용 역시 지식으로만 받는다면 교만하게 한다고 말씀한다.

12:47-48에는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는 말씀이 있는데 뒤집어 보면 무언가를 안다는 것이 그리 좋은 것 같지 않다.  일단 알게 되면 책임이 생기고 그에 대한 처벌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다면 누가 알려고 하겠는가?  ‘몰랐어요’ 라고 하며 책임을 회피하면 된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함을 말씀하고 더우기 지식은 구원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밝힌다.  17:3은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라고 분명히 말씀한다.  구약에서도 호세아는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4:6)’ 라고, 6:3에는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고 기록한다.

벧후 3:18은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지어다’라고 기록하는데,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교만하게 하지 않고 온전히 주님을 의지하게 하는 지식이다.  제대로 아는 것은 우리에게 힘을 주고 더욱 주를 의지하게 하며 주님과의 교제 안으로 이끈다.  이러한 지식은 우리로 죄를 멀리하게 한다.

모르는게 약도 아니고 아는게 힘도 아니다.  주님을 아는 지식은 우리를 살리는 지식이다.  그것은 영광이다.

주님, 지식과 정보가 범람하는 이 시대에 아는 것이 많다고 생각해도 결국 주님을 알지 못하면 아무 것도 알지 못함을 깨닫습니다.  주님을 아는 지식 안에서 오늘도 성장하게 하셔서 주님과의 온전한 연합을 이루게 하소서.  우리로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게 하소서 ( 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