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구약 성경은 반드시 필요하고 또 구약이 있다는 것은 매우 감사한 일이지만 구약 성경을 잘못 읽으면 마치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이 된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  그래서 오늘 구절의 말씀은 매우 중요하지만 이러한 말씀은 이제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지성소의 휘장이 찢어진 것과, 그로 인해 그리스도 안에서는 누구든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당당히 나아갈 수 있음을 아는 것에 우선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 4:16). 

구약의 경륜에서 하나님의 정하신 일은 분명하고 사람이 결코 범할 수 없다 (물론 신약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본보기로 향로를 쳐서 제일 눈에 띠는 제단을 싸는 철판으로 만들었다.  이것을 신약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 누구도 그리스도의 공로에 무언가를 더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오직 그리스도만 우리와 아버지 하나님 사이에 중재자가 되신다. 

본보기로 기념물을 삼았지만 정작 다음날이 되자 백성들은 모두 잊고 다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을 죽였다’고 말하고 그들을 친다.  결국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에게 염병을 내리시고 14,700명이 죽임을 당한다.  이 염병이 어떤 것이지 모르지만 순식간에 퍼졌고 즉시 사망에 이르게 하는 무서운 병이었다.  모세가 아론에게 향로를 가져가서 속죄하라는 말이 조금만 늦었더라도 모든 백성이 죽임을 당했을지 모른다 (45).  원래 문제가 향로에서 시작됐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너무도 빨리 잊었기에 다시 향로를 가지고 중재하며 속죄하는 사역을 한다.

현실을 살아가며 그리스도의 어떠하심을 잊을 때가 너무 많다.  같은 죄를 반복하는 이유는 육신이 연약한 것도 있지만, 그리스도의 어떠하심을 잊었기 때문이다. 

주님, 정작 모세는 좋은 땅으로 들어가지 못했지만 여호수아는 백성을 좋은 땅으로 인도했음을 기억합니다.  우리에게 여호수아 되신 예수께서 또한 좋은 땅 되십니다.  주님 안에 거함으로 죄를 떠나고 주님의 생명으로 열매 맺는 주의 백성되게 하소서.  오늘도 주님과의 관계가 조금 더 깊어지기 원합니다.  나의 욕심과 욕망,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 5:24) 말씀을 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