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절을 개정역에는 ‘…죽을까 하노라’고 번역한다. 죽을까 하노라… 어디서 들은 얘기같다. 창세기 3장 여자가 뱀에게 말한 내용이다. 하나님은 ‘죽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지만 여자는 ‘죽을까 하노라’ 라고 말한다. 바꿔 말하면 죽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하나님은 ‘죽으면 어떡하지?’ 라고 말씀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거역하면 죽음 뿐이다. 잘못된 번역이다. 죄를 지으면 죽을 수도 있다가 아니라 반드시 죽는다. ‘하나님의 은혜’로 너무 심판에 무뎌져 있다…
5절은 ‘…직무를 다하라 그리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미치지 아니하리라’ 고 기록한다. 앞 구절은 모두 ‘죄 (영어로는 iniquity 즉 죄악 혹은 범죄함 혹은 범법)’ 를 말하는데, 이것은 소위 말하는 ‘자범죄’의 의미가 강하다. 즉 하나님 앞에 불의가 들어났을 때 이러한 성막과 성소의 섬김을 통해 여호와의 진노가 미치지 않으실 것을 말씀하는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든다. 물론 죄를 짓고 그에 대한 사하심을 말씀하시기에 감사하기는 하지만 마치 맘껏 죄를 지어도 단지 제사만 드리면 진노를 피할 수 있다는 식으로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우기 이 ‘직무’는 레위 지파에 한정되어 있다. 마치 백성들이 마음껏 죄를 지어도 레위 지파들만 잘 성전 집무를 해나가면 문제 없다는 식으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직무를 ‘다하라’는 말씀은 그 이상이다. 레위 지파는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주신 ‘선물 (6절)’이고 그들의 충성된 직무와 본을 보임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은 바로 선다. 에베소서에는 동일한 선상에서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 섬기는 자들을 선물로 주셨음을 본다. 이렇게 선물로 주신 자들은 신자들 가운데 군림하는 이들이 아니라 그들을 섬기며 세우는 일을 한다. 마찬가지로 일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에게 처음 것을 돌리므로 그들의 섬김을 인정하며 이는 여호와를 인정하는 것이 된다. 그럴 때 그 공동체가 바로 선다.
10절은 ‘지극히 거룩하게 여김으로 먹으라’고 말씀한다. 제사장들에게 주어졌다고 마음대로 먹는 것이 아니라 구별된 것으로 거룩하게, 그것도 지극히 거룩하게 여김으로 먹어야 한다 (킹제임스는 '지극히 거룩한 처소에서'로 되어있다). 먹는 것은 가장 기본적이고 일반적인 것이지만 아론의 자손들은 먹는 것도 거룩해야 한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만찬 역시 지극히 거룩해야 하며, 특히 이 만찬은 특별한 행위인 동시에, 매우 평범한 행위 즉 먹는 것이 거룩해져야 할 것을 말씀한다. 전에는 아론의 자손만이었지만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왕족이요 제사장 된 믿는 이들이 지키며 누려야 할 실행이 된다.
흥미로운 것은 아론과 그 아들들 즉 제사장들에게 돌릴 것들에 대해 ‘바치다, 주다’ 등으로 쓰지 않고 ‘대속’이라는 말을 썼다. ‘대속’이라는 말은 매매에 관련된 말이기도 하지만 또한 매우 종교적인 단어이기 때문에 이해가 쉽지 않을 수 있다. 사람에게서 처음 난 태생과 처음 태어난 부정한 짐승에 대해 대속할 것을 명하시는데 (15절), 그 이유는 그들을 하나님께서 제사장들에게 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적으로 첫 태생은 제사장의 소유가 되는데, 부모들이 자신의 것으로 돌리기 위해서는 ‘대속’해야 하는 것이다. 즉 이것은 결국 모든 것의 법적 소유주가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하는 ‘대속’의 원리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속해서 죽으신 것 역시 죄사하심의 주체가 오직 하나님 아버지심을 의미한다.
또한 이 대속은 성소의 세겔로 하는데 (16절), 그렇기 때문에 세상 화폐의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거룩한 하나님의 어떠하심은 우리의 온전한 헌신을 요구한다.
주님, 첫째 혹은 처음 것을 주께 드림으로 모든 것이 주의 것임을 고백하는 이 아름다운 증거가 나의 삶 속에 있게 하소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기에 작은 것에 충성해야 함을 배웁니다. 하나 하나 거룩하게 하소서. 믿는 이들의 삶 속에 거룩의 지경이 넓혀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