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브핫 딸들은 자신들의 처지에 대해 청원했는데, 아들이 없던 아버지에게도 기업을 얻게함으로 그 이름이 지속되기를 구했다. 그들의 논리는 매우 탁월했는데 자신들의 아버지가 비록 ‘자기 죄로 죽었’지만 (3절) 고라의 무리처럼 여호와를 거스르지는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기업을 받을만 하다고 요구한다. 구약에서 영적 지식이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죽음이 죄의 결과임을 알았다. 그래서 대제사장들 역시 먼저 자기 죄를 위해 제사를 드리는 것이 필요했다 (히 7:27). 더불어 이들에게 기업을 얻는 문제는 목숨이 달린 문제였다.
이 슬로브핫 딸들이나 슬로브핫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이들의 이름이 꽤 자주 등장한다. 민수기에서만 지난 장을 포함하여 7번, 그리고 여호수아에서 1번, 그리고 역대상에서 1번 등장하여 총 9번이나 나온다. 이들에 대해 추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마도 그 이름들에 있겠지만, 그것은 좀 더 연구를 할 필요가 있겠고, 다만 딸들 중에 이름이 노아인 인물이 있다. 노아라는 이름이 양성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이름인지는 모르지만 ‘안식’ 혹은 ‘위로’를 의미하는 이러한 이름을 딸에게 준 슬로브핫은 아마도 믿음의 사람이 아니었나 짐작하게 한다.
재미있는 것은 그들은 그들의 입장에 대해 탄원함으로 그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졌지만, 후에 이 일은 ‘판례’가 되어 기업을 무르는 일에 기준이 된다. 그리고 드디어 룻기에 이르러 보아스와 룻을 맺어준 규례가 이 사건이 배경이 된다 (룻 2장, 3장).
슬로브핫 딸들의 예 정도는 아마도 모세나 장로들이 상의해서 결정할 수도 있을 문제였다. 하지만 모세는 이 문제를 여호와께 아뢰는데, 여호와 하나님은 ‘슬로브핫 딸들의 말이 옳’다고 말씀하신 것 뿐만 아니라 이 문제를 ‘판결에 대한 규례’로 만들라 명하신다. 이것은 슬로브핫 딸들과 모든 그의 백성들에 대한 배려도 있겠지만 그리스도의 계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만일 이러한 판례가 없었다면 나오미는 룻과 보아스 사이에 연결고리를 발견할 수 없었을 것이고 그리스도의 계보에 차질이 생겼을 것이다.
주님, 슬로브핫 딸들의 청원에 대해 임의로 결정하지 않고 주 앞에 가져가 아뢴 모세를 봅니다. 하찮아 보이는 문제라 할지라도 주님 앞에 가져갈 때 그것이 나의 문제에 대한 해결만이 아니라 주님 오시는 길을 예비할 어떤 기준이 될 수 있음을 봅니다. 제 안에서 더 역사하여 주소서. 작은 것이라도 주께 아뢰며, 매사에 주를 인식함으로 주와 동행하게 하소서.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준비하는 청원자가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