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를 하면 그 날 말씀을 그날 적용할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잘못 이해하거나 혹은 잘못 적용하면 안하니만 못하다. 2절의 ‘원수를… 갚으라’는 구절을 현재 누군가 미워하는 사람에 대해 적용한다면 큰 문제다. 이 구절은 1절 말씀 처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한 것이고, 원수 갚는 이유는 ‘이스라엘 자손’에 대한 것이지 나 개인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레위기 19:18은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고 말씀하는데 그 이유는 ‘나는 여호와니라’ 즉 원수 갚는 문제가 하나님의 주권하에 있고 우리는 그의 백성이기 때문이다. 신명기 32:35에도 비슷한 말씀이 있는데, 킹제임스 역에서는 ‘복수와 보응이 내게 속해 있으니…’ 라고 기록하며 신약 롬 12:19가 이를 인용했다.
주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고, 또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 (눅 6:27)’라고 말씀하셨다. 롬 12:19는 ‘..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히 10:30에도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라고 말씀한다. 원수 갚는 것을 주께 맡기는 것은 물론이고 원수를 사랑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것이지만 이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문제와 연관된다. 우리가 대적하고 싸워야할 대상은 엡 6:12의 말씀처럼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수를 갚으라고 명하신 이유는 2만 4천명을 염병에 죽게 한 미디안과 그 배후의 발람의 계략에 대한 것이고 결국 발람도 죽임을 당하는데, 이러한 정황은 주님께서 말씀한 ‘실족’의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발람은 올무를 놓은 것이며 매우 악한 것인데, 주님께서 말씀하신 '실족케 함'이 생각난다. 주님은 마 18:7과 눅 17:1에서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라고 엄중한 경고를 하셨다.
마 18:6에는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고 말씀하는데, ‘실족’이라는 말은 원어로 ‘스칸달리조’이다. ‘실족’이라는 말은 ‘발을 헛디딘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실수’의 의미로 들릴 수 있지만, ‘스칸달리조’는 ‘남을 넘어지게 하기 위해 돌부리를 만들어 놓다, 죄를 짓도록 유혹하다, 믿음에서 떠나 의심하게 하다, 마음 상하게 혹은 분노하게 하다’ 등의 의미이기 때문에 사실은 매우 능동적이며 적극적으로 악을 행한다는 뜻이다. 원수 갚는 문제에서 자유함을 받지 않으면 오히려 실족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될 수 있다. 짧은 인생에서 어떤 일이 연류되어 참으로 힘들어질 때, 또 그것이 분이 되어 원수를 갚으려고 할 때, 결국 인생을 허비하게 된다. 원수는 하나님께서 갚으신다.
주여, 원수같아 보이는 사람들이 원수가 아니라 배후의 악한 영들이 우리와 주의 원수임을 깊이 깨닫게 하소서. 쉽게 분노하고 내 자신이 판단하려는 이 교만에 십자가를 적용합니다. 정말 어처구니 없는 사건에 휘말려 긴 시간 동안 고통 받는 이들에게 주님의 은혜를 충만하게 부어주시고 그들이 영원을 바라보며 살 수 있는 귀한 믿음 주소서. 주님을 믿는 작은 자 하나라도 주님께서는 정말 귀하게 여기심을 배웁니다. 오늘의 삶이 어제의 분노와 아쉬움을 이어가는 삶이 아니라 주의 은혜로 모두 보내 버리고 새롭게 살게 하소서. 적극적으로 실족하게 하는 소위 ‘형제 자매’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정말 거듭난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하루 되게 하소서. 그들에게도 주님의 은혜가 필요하고 주님께서는 그들을 위해서도 죽고 부활하셨음을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