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을 자세히 보니 어제의 나눔이 틀린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원어의 사람은 ‘아담’이 맞지만 반드시 남자를 의미하지 않고 일반적인 ‘사람’을 의미하기도 하며 35절은 ‘사람은 남자와 동침하지 아니하여서 사내를 알지 못하는 여자가 도합 삼만 이천 명이니’ 라고 했고 이 숫자에서 나누었기 때문에 이하 ‘사람’ 역시 남자를 알지 못하는 여자들을 의미합니다. 결론적으로 모든 남자는 전멸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잘못된 해석에 대해 사과를 드립니다.)
전쟁에서 죽은 사람이 한명도 없는 대승을 거두고 탈취해온 어마어마한 양의 모든 전리품에 대해 나누는 내용이다. 직접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은 물론 많은 양을 받았지만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던 백성들에게도 전리품들이 나누어지며, 군인들에게는 오백 분의 일을, 백성에게는 오십 분의 일을 레위인들에게 돌림으로 여호와께 바친다. 만일 군인들에게만 전리품이 돌아갔다면 백성들 중에 불만이 생겼을 것이다. 군인들은 특별한 이유로 선택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원해서 전쟁에 나가려고 했던 이들도 있을 수 있었겠지만 어떤 이유로 못나갔다면 이들에게 아무런 혜택이 돌아가지 않으면 불공평하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만일 군인들에게 돌아가는 양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면 목숨을 걸고 싸운 것에 대한 대가를 인정받지 못한 것이 되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훨씬 많은 양이 돌아갔고, 레위인들에게도 오백 분의 일만 돌리면 되었다. 열심히 일한 자, 대가를 지불한 자들에게는 그만큼 보상이 크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자면 군인들도 백성들 가운데 속했기 때문에 얼추 비슷하게 모두에게 돌아간 것이 된다. 이것이 바로 공동체이다. 나눔 공동체이고 운명 공동체이다.
대한민국은 친일파와 일제 잔재에 대한 미흡한 처리로 21세기 오늘까지도 논쟁 중이다.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한 이들의 후손은 다수가 몰락했지만, 나라와 민족을 배신하고 친일행위를 일삼았던 이들의 후손은 교육도 잘받고 많은 것들을 물려 받아 권력을 누리며 사는, 공평과는 먼 세상이 되었다. 이러한 실태는 현재 좌익 (혹은 좌파) 들이 단결할 수 있는 명분을 주는 것으로 보이는데, 앞으로 국가가 위태할 때 과연 누가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킬까… 열심히 싸운 이들에 대해 합당한 보상은 반드시 필요하다.
신앙의 삶 역시 동일한 원리가 적용되는데, 하루 하루 사는 삶에서 승리를 맛보지 못하고 항상 실패만 하고 죄만 짓는다면 신앙은 실패하는 것으로만 습득될 수 있다. 하지만 전쟁이 있고, 싸움이 있고, 원수를 바로 안다면 가끔씩 도발하는 삶의 도전이 또 하나의 정복할 산이 된다. 그래서 고난에는 유익이 있다. 그래서 시험을 통과하며 나의 점수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믿음은 선한 싸움을 싸우게 한다 (딤전 6:1). 그리고 거기에는 영원한 보상이 주어진다.
주님, 공동체로서 서로 돌아보아 격려하며 선한 싸움에 호전적이 될 수 있도록 이끄소서. 어려운 일 당할 때 눈물로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님 주신 능력과 권위로 선포하며 승리하게 하소서. 전리품을 취하게 하시며, 서로 나눔으로 이기고 또 이기게 하소서. 오늘 하루 여러 가지 것에 대한 도전이 있습니다. 믿음에 약해지지 않고 감사함으로 주께 의지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