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므낫세 반 지파라는 말이 등장한다. '므낫세 지파의 반'이라 불리지 않고 계속 성경은 므낫세 '반 지파'로 기록하는데, 영어 역시 half of the tribe of Manasseh 라고 하지 않고 half-tribe 혹은 half tribe of Manasseh 로 기록한다. 므낫세는 반으로 나뉘었지만 그 각자를 지파로 인정한다는 의미인데, 이는 매우 현실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므낫세 지파가 둘로 나뉜 이유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대상 7:14-15의 내용을 보면 처의 소생으로 아스리엘이 태어나고 아람 여인인 첩으로부터 마길과 슬로브핫이 태어났다 (이 슬로브핫은 민 26의 딸만 다섯인 슬로브핫과는 동명이인이지만 이 사람 역시 딸만 낳았다). 그래서 아마도 처의 후손과 첩의 후손으로 반반씩 갈리지 않았나 추론할 수 있다. 오늘 말씀 39-40절도 므낫세 후손 중에 '마길의 자손'이 길르앗을 차지한 것을 기록한다.

이것은 매우 현실적인 문제인데, 이와 더불어 지난 26:34은 므낫세 지파가 52,700 명으로 수가 매우 많았음을 알 수 있고, 그래서 두 몫의 영토를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처의 후손과 첩의 후손이라는 공존이 쉽지 않은 정체성이 있고, 더우기 많은 인구는 현실적으로 가나안 좁은 땅에 함께 살기 쉽지 않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흉년이들자 계속 남쪽으로 내려가다 애굽까지 내려갔다. 결국 죄를 짓게 되지만 이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였다. 현실을 핑계로 믿음을 저버릴 수는 없지만 현실을 아예 무시할 수도 없다. 시공간에 제한된 육신을 가진 인간이 현실을 어찌 무시하랴... 그래서 주님께서도 '사람이 빵으로만 살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이 영을 살리시지만, 우리의 육신은 빵 역시 필요하다. 현실에 얽매이면 믿음의 삶을 살기 힘들고 현실에 안주하면 죄짓기 쉽지만 현실 자체가 선교의 장이고 복음이 실행되며 믿음이 시험되는 장이다.

신기한 것은 므낫세 지파가 계시록에도 나오는데, 더 이상 므낫세 반 지파라 불리지 않고 므낫세로 나온다. 그리고 요셉의 다른 아들은 에브라임이지만 에브라임 지파라고 나오지 않고 그냥 요셉 지파로 나온다. 므낫세는 주님 오시는 날에는 더 이상 둘로 나뉜 '반 지파'가 아니라 당당하게 하나로 연합되며 한 지파로서 그 이름을 인정받는다. 더 이상 처와 첩의 출신으로 갈린 두 개의 반쪽짜리 지파가 아니라 애굽 어머니 출신의 므낫세 역시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 중 하나로 영원히 인정받는다.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은 하나가 되었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 중계인이 되신다.

주님, 현실에서 우리 자신의 힘은 물론 우리 자신의 믿음으로만 신앙 생활하기는 불가능함을 고백합니다. 그리스도의 공로가 있고, 주님 주시는 믿음이 있으며, 분리된 것을 하나되게 하시는 그리스도가 계심을 감사합니다. 이러한 이상을 붙잡고 현실을 삽니다. 므낫세 반 지파가 하나가 되듯, 언젠가는 이상이 현실 될 것을 믿습니다. 오늘 현실 안에 그 이상을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