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가난안 땅을 기업으로 나누는 일에 대한 총 책임자로 한 명을 세우시지 않고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두 명을 세우신다. 모세가 했었다면 혼자로도 충분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만, 율법을 대표하는 모세에게는 아예 가나안 땅이 주어지지 않았고, 생각해 보면 모세에게도 제사장 아론이 필요했다. 제사장은 율법과 관계있지만 결국 이들을 인도하는 것은 믿음의 사람 여호수아이다. 율법은 몽학 (혹은 훈육) 선생이 되어 그리스도께 인도한다 (갈 3:24).
아홉개 반 지파를 열거하는데 육체적 장자인 르우벤은 요단 동편에 거하기로 작정하면서 첫 째로 지명된 지파는 유다가 되었다. 이는 그리스도의 계보를 잇는 유다의 영적 장자권에 대한 암시라는 생각도 들지만 우선은 그 책임자 이름이 여분네의 아들 갈렙 즉 1세대 중 살아남은 유일한 두 명 중 한 명으로 다른 지휘관 중 가장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에 유다 지파가 먼저 거론된 것 같다.
각 지파의 원래 이름은 존재하지만 세대가 바뀌면서 그 지휘관들은 계속 바뀔 수 있다. 그 때 마다 주님은 지휘관들을 부르신다. 이러한 면은 계시록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연상하게 한다. 주님께서는 소아시아 여러 도시에 있던 주님의 교회에게 말씀하시며 해당 교회의 ‘천사 (혹은 메신저, 사자, 앙겔로스)’에게 편지하라는 명으로 시작하시는데, 항상 끝은 ‘이기는 자’를 언급하신다.
교회는 주님의 몸이지만, 그 안에 특별히 ‘이기는 자’가 있다. 이것은 목회자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재미있는 것은 ‘이기는 자’는 항상 단수로 쓰였는데, 각 교회마다 단 한 명의 이기는 자가 존재한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교회는 항상 두 명 이상 복수의 믿는 이들의 모임이지만 이기는 자는 항상 단수로 표현된다. 악한 영을 대적할 때는 주님의 몸된 교회로 함께 싸우지만, 그 가운데 이기는 자는 개인적인 승리의 경험을 소유한다. 각 시대의 도전을 이기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며 교회 안에 부정적인 것들에 대해서도 이기고 있는 이들이다. 이들이 진정 각 교회를 대표한다 (물론 목회자들이 이기는 자였으면 좋겠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은 것을 본다).
주님, 정복할 땅이 있고 이끌 백성이 있으며 이를 위한 지휘관이 세워짐을 봅니다. 이 시대의 이기는 자를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소서. 교회로서 함께 원수를 대적하는 것을 믿지만 현실적으로는 많은 순간 영적 싸움이 개인적인 것임을 경험합니다. 엘리야가 혼자 850명의 바알 선지자들을 대적한 것 같이 많은 순간 외롭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앙망함이 필요함을 고백합니다. 연약한 자로서는 이길 수 없사오니 사내답고 강해질 수 있도록 나의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케 하소서. 주님 외에 다른 것을 하나 더 포기하고 제거함으로 승리를 경험하는 하루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