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사는 문제는 현실이다.  역사적으로 먹고 사는 문제는 거의 모든 갈등의 근원이 된 것으로 보인다.  공산주의는 인간의 삶의 근본 문제를 생산과 분배에서 오는 자본가와 노동자 두 계급 간의 갈등으로 보았다.  지난 34장은 생산의 가장 중요한 수단인 땅을 분배하는 문제를 기록하고, 이제 35장은 다른 지파들과는 달리 땅을 기업으로 받지 않는 레위인들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레위인들 역시 땅을 받는다.  그들 역시 살려면 집 지을 공간이 필요하고 특히 그들도 ‘재산인 가축과 짐승들’을 소유한다.  제사나 종교에 관련된 일 외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도피성이라는 마을과 그 외 성읍도 주어진다.

전에 모 교단에서는 목회자들이 목회 외에는 다른 일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하나님의 은혜만으로 살라는 권고는 이해가 되고 좋은 말이기는 하지만 요즘 현실이 그리 녹록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만일 그러한 권고가 실행되어지기 원한다면 교단 차원에서 소속 목회자들 중 미자립 교회를 섬기는 분들이 기본적인 삶은 영위할 수 있도록 경제적으로 지원해야한다.  미자립 교회 수가 생각보다 매우 많다고 하는데, 이들을 섬기는 목회자들은 이중직을 고려하거나 실제 주중에 목회 외의 일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정말 풀타임으로 혹은 오버타임으로 ‘주의 일’에 종사하는 것은 영광이지만, 현실적으로 아침부터 밤까지 ‘영적인’ 일만 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어쩌면 시간이 많이 빌 수도 있는 것이 목회자의 삶일 수도 있는데, 그럴 때 손으로 하는 일이 필요하다.  고등학교 후배인 김모 목사님은 20년 목회 후 목수로 전향하여 일하고 있는데, 기회가 생길 때 마다 강의도 하고 목수 일도 하면서 노동의 가치를 누리며 전파하고 있다. 레위인들 역시 가축을 소유했고, 가축 기르는 일은 그들의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하게 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일’을 종교적인 일로만 오해할 때 레위인이 사라진 오늘날에도 ‘성직’ ‘세상직’ 혹은 ‘교회일' '세상일’로 나누게 된다.  하지만 예배는 삶 자체이고 ‘목사만이 성직이 아니라 다른 모든 직업도 성직’이라는 김ㄷㅎ 목사님의 말처럼 믿는 이들의 모든 생활이 하나님 앞에 열납될 수 있어야 한다.  들림 받는 성도는 기도하거나 설교 말씀 듣는 중에 들림 받지 않고, ‘밭을 갈’다가 ‘잠을 자’다가 ‘맷돌 갈’다가 ‘길을 가’는 지극히 정상적인 생활 중에 들림 받는다.  이러한 모든 정상적인 삶 속에서 그들은 기도하며 말씀을 묵상하며 예배의 삶을 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 ( 6:29)’ 이다.

아무튼 레위지파까지 그 분배되는 땅과 도성 등을 말씀하는 것은 신약의 ‘시민권’이라는 말을 연상하게 한다.  원래 commonwealth 라는 의미로서 한 공동체에 속함으로 얻는 혜택을 의미하는데, 자신이 열심히 일하거나 똑똑하거나 지위가 높기 때문에 누리는 혜택이 아니라, 누구든 공동체에 소속되기만 하면 누릴 수 있는 어떤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아름답게 꾸며 놓은 공원은 ‘공공의 동산’이라는 뜻이다.  누구든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공원을 방문해서 안식을 취하며 그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다.  그 외 여러가지 공적 자원을 누리는 것이 바로 ‘시민권’ 혹은 commonwealth 이다.

생명의 삶 해설은 ‘분배’라는 말을 쓰는데, 이 시민권은 ‘분배’를 가능하게 한다.  헬라어로 ‘분배’는 ‘오이코스’라는 단어인데, 한국어는 ‘경륜’으로 번역되었고, 영어에서는 administration, stewardship 혹은 dispensation으로 되어있다.  이러한 단어를 종합해 보면 하나님의 놀랍고 풍성하신 생명을 맡은 (stewardship) 이들이 그들의 섬김 (administration)을 통해 믿는 형제들에게 그 동일한 생명을 분배 (dispensation) 한다는 의미이다.  재미있게도 이 ‘오이코스’는 영어 ‘이코노미’ 즉 ‘경제’의 어원이다.  하나님의 경제는 그의 무한하신 어떠하심을 믿는 이들에게 분배하시는 것이다.  인간의 경제에는 항상 ‘희소성’이 문제가 되지만, 무한하신 하나님의 공급하심에는 한계가 없다.  그래서 ‘많이 받은 자에게서는 많이 떼어서 주고 적게 받은 자에게서는 적게 떼어 줄 것 (8)’을 말씀한다.  결과적으로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않게 된다 (고후 8:15).  남는다면 낭비가 되고 모자르면 궁핍한 것이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모두 풍족히 쓰는 것이다.  ‘은혜의 경륜’ ( 3:2)이 바로 이렇다.

주님,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레위지파를 택하여 주신 주님께서 오늘 교회안에도 몇을 선물로 주셨음을 감사합니다.  그들의 눈물과 수고를 기억하며 존경하기 원합니다.  주의 종들과 먼저 믿은 자들이 물질에 마음을 두지 않게 하시고 다만 형제들에게 주의 생명과 은혜를 풍성히 나눌 수 있도록, 그리고 하나님 보내신 자 안으로 더욱 믿을 수 있게 인도하도록 오늘도 영광 가운데 풍성히 채우소서.  주의 채우심 없는 인간적인 만족과 행복은 구하지 않기 원합니다.  주님의 경제가 오늘 교회 안에 구비쳐 흐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