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시편 42편 내용은 힘든 상황 중에 하나님을 찾는 내용이다. 오늘 역시 내용은 비슷하지만 다른 점이 있는데, 42:8에는 ‘여호와’라는 말이 나오지만 오늘 말씀에는 ‘여호와’라는 말이 없이 모두 ‘하나님 (엘로힘, 엘)’이다. 아마도 상황적으로 42편 보다 훨씬 힘들어 더 이상 친밀하신 ‘여호와’의 임재가 없이 머나먼 어디엔가 계시는 ‘하나님’을 부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었으면 ‘나를 판단하십시오 오 하나님 내 송사를 변호해 주십시오’ 라고 구한다. 더우기 2절은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까지 묻는다.
특이한 것은 1절에 ‘경건하지 아니한 나라에 대하여 내 송사를 변호하시며 간사하고 불의한 자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라고 구하는데, ‘경건하지 아니한 나라’와 ‘간사하고 불의한 자’는 모두 단수다. 주위 여러 나라나 혹은 누군지 모르게 자기를 해하려 하는 자들에 대한 송사가 아니라 다윗이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나라 그리고 ‘그 (the) 간사하고 불의한 자’로부터 구원해 달라는 간구이다.
믿음 생활 중에 가장 힘든 것 중에 하나가 아마도 내가 믿어왔던, 그리고 의지해 왔던 일가 친지 혹은 믿음의 형제 자매가 등을 돌리거나 나를 실족하게 할 때일 것이다. 더우기 그런 상황 중에는 내가 잘못한 것 같고 (물론 잘못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 조차 함께 계시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결국 내가 구해야 할 것은 상황이 나아지는 것이 우선이 아니다. 다윗은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소서 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라고 기도한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주의 거하시는 거룩한 곳에 가기 원한다. 하나님께 찬양드리기 원한다. 그리고 다시 2인칭으로 자신에게 명한다. ‘하나님 안에 소망하라!’
주님, 부를 때 친근하신 주님의 이름이 갑자기 너무도 먼 것 같이 느껴질 때, 사랑하는 이들로 인해 내가 힘들어질 때, 그들로 인해 내가 실망할 때, 또 내가 그들에게 실망을 줄 때, 어떻게 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할 때,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소서. 우리를 위해 철저히 아버지께 버림 받으셨던 주님을 기억합니다. 주께서 버림받으심으로 우리가 완전한 용납을 얻었음을 압니다. 주 안에 품은 소망을 다시 새롭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