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생활은 하나님의 은혜에 기반한 것이고 믿을 때에 기적이 따른다 ( 16:17).  하지만 우리가 예상하는 기적, 예를 들어 오병이어나 물이 포도주가 되는 등의 기적은 흔하지가 않은데, 기적은 그 자체가 자연 법칙을 거스르는 현상이기 때문에, 질서로 만물을 창조하시고 운영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기적을 그리 흔하게 보여주지는 않으신다.  하지만 자연 현상을 들여다보면 그 자체가 기적적인 것이 매우 많다.  우리 몸의 메타볼리즘이나, 여러 물리적 현상 등은 그 자체가 진기하고 기이하다.

고라 자손은 이스라엘이 과거 가나안 땅을 차지한 것에 대해 여호와께 영광과 공을 돌린다.  2-3절은 ‘주께서 주의 손으로 뭇 백성을 내쫓으시고 우리 조상들을 이 땅에 뿌리 박게 하시며 주께서 다른 민족들은 고달프게 하시고 우리 조상들은 번성하게 하셨나이다 그들이 자기 칼로 땅을 얻어 차지함이 아니요 그들의 팔이 그들을 구원함도 아니라 오직 주의 오른손과 주의 팔과 주의 얼굴의 빛으로 하셨으니 주께서 그들을 기뻐하신 까닭이니이다’ 라고 선포하는데, 현실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칼이나 활 등 무기를 썼고 비교적 긴 세월 동안의 힘든 싸움을 통해 그 땅을 얻었다.  어찌보면 그 땅은 투쟁의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모두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으로 돌린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태도를 눅 17: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는 말씀으로 설명하시는데, 종들은 분명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러한 고백을 했다. 

6절은 ‘나는 내 활을 의지하지 아니할 것이라 내 칼이 나를 구원하지 못하리이다’ 라고 기록하는데, 5절에서는 ‘주를 의지하여.. 주의 이름으로..’ 라고, 7절은 ‘오직 주께서..’ 라고 고백한다.  왜 주를 의지하고 주의 이름으로 하며 오직 주께서 하신다고 선포하는데 아직도 활이나 칼을 (의지하지는 않지만) 소유하는가?  이러한 내용은 믿음이 무엇인지 말해준다.  믿음은 요행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에서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 철저히 준비해야 함을 보여준다.

물론 칼과 활이 전혀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 완전히 무기력해서 전혀 어떠한 준비를 할 수도 없을 때, 혹은 주님께 그러한 명을 받았을 때는 하나님께서 그 선하신 뜻 안에서 기적을 행하실 수 있다.  엘리사 때 아람군의 눈을 멀게 한 것이라든가, 히스기야 때 앗수르 군사를 전멸시키신 것, 베데스다 못의 병자에 대한 기록 등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구원하심이었다.  이러한 기적이 필요한 상황들이 있을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기적을 경험하는 것은 현실에서 하나님의 임재하심 그 자체이다.  그리고 그 임재하심은 나를 정결하게 할 때 체험된다.  그 때 비로소 모든 것은 주님께서 하셨습니다 라고 고백하게 된다.

주님, 주님을 섬기는 것이 주님을 시험하는 것이 되지 않게 하소서.  내가 주님의 노예임을 고백합니다.  주께서 명하신 것에 대해 먼저 다 행함으로 함께 하시는 주의 기적을 경험하게 하소서.  주신 분은 주님이시지만, 취하는 것은 우리에게 맡기셨음을 믿습니다.  나의 칼과 활을 정비합니다.  나의 생각과 마음을 새롭게 하소서.  열심을 내고 회개하게 하소서.  주 앞에 무릎 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