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소위 ‘하나님을 잘 믿는’데도 어려운 일이 닥치고 주위로 부터 조롱을 당하며 더우기 이러한 일은 ‘주께서 (9-14절)’ 하셨다고 기록한다. 더우기 17절은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임하였으나 우리가 주를 잊지 아니하며 주의 언약을 어기지 아니하였나이다’, 18절은 ‘주의 길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나’, 그런데도 ‘주께서 우리를 승냥이의 처소에 밀어 넣으시고 우리를 사망의 그늘로 덮으셨나이다 (19절)’ 라고 말한다.
결국 22절은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라고 탄식한다. 시편 기록 당시 어떤 상황이었는지 모르지만, 마치 2차 대전 중 유대인들이 겪었던 고난을 예언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결국 고라 자손은 ‘주여 깨소서.. 일어나소서’ 라고 부르짖는다. 시편 여러 곳에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라고 부르짖는데, 만왕의 왕이신 여호와는 그 보좌에 앉아 계시지만, 그의 백성을 위해 일어나시기를 간구하는 모습이다.
바울은 로마서 8장 18절에 믿는 이들이 받는 고난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 어떤 것도 끊을 수 없는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설명하는데, 22절을 상대적으로 인용했다. 즉 고라 자손은 한탄하며 기록한 내용이지만, 바울은 이제 믿는 이들에 대해서는 ‘아니다, …넉넉히 이기고 있다 (37절)’라고 선포한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라고 부르짖은 고라 자손에 비해 바울은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34절)’ 라고 말하는데, ‘살아나다’의 원어는 ‘일어나다’이다. 고라 자손의 간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다. 주 예수는 죽으셨고, 다시 일어나셨다. 주님의 부활로 우리는 논리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하는 가운데에도 넉넉히 이기고 있다 (후페르니코멘).
주님, 이해할 수 없는, 논리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려움을 통과하며 주님만을 의지합니다. 과거 고라 자손은 이해할 수 없어서 여호와께서 일어나시기를 구했지만,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능력되셨음을 봅니다. 그 어느 것도 끊을 수 없는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 예수 안의 하나님의 사랑이 오늘도 나의 삶을 덮으시고 나의 가족을 덮으시며 주의 교회를 덮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