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외에 의지할 것들을 많이도 확보해 놓았다. 한가지 만으로는 부족해서 자신의 삶에 안전과 행복을 보장해 줄 수 있어 보이는 것들을 많이 마련해 놓았다. 교인들 중에도 말씀과 성령만으로는 부족해서 점을 치러 간다든가 타 종교의 가르침을 찾는다는가 하는 이들이 있다. 주님의 음성을 듣기가 쉽지 않고, 그래서 마음이 답답한 것은 이해 되지만 그러한 행위는 영적 자존심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들이 또 세상적으로는 잘 사는 경우가 많다. 결국 그들의 목적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고 이를 위해 열심을 내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세상적인 성공을 내려놓으라고 하시면 과연 얼마나 순종할 수 있을까?
총체적으로 타락했던 당시 모든 상황 가운데 ‘의인 (10절)’을 언급하신다. 오늘 말씀 중 유일하게 긍정적인 단어다. 그래서 외롭게 느껴진다. 사실 의인의 삶은 대중적인 삶은 아니기에 의인의 길을 가는 것은 매우 외로운 일이다. 아벨도 외로웠고, 노아도 외로웠고, 아브라함도 외로웠으며, 모세에게서도, 엘리야에게서도 외로움은 발견되며, 그 외 의인의 길을 갔던 여러 인물들은 외로워 보였다. 하지만 먼저 주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셨고, 그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했다 (히 11:13).
10절은 ‘너희는 의인에게 복이 있으리라 말하라 그들은 그들의 행위의 열매를 먹을 것임이요’ 라고 기록하는데, 다행히도 ‘의인’은 복수다. 의인이 외롭지 않으려면 혼자 믿음 생활을 하지 말아야 한다. 서로 믿음과 힘과 용기를 북돋워줄 수 있는 믿음의 권속이 필요하다. 신앙 공동체인 교회가 필요하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이 매일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하듯, 또 자신의 삶에 대해 회개를 하듯, 교회는 계속해서 종교적인 색채를 버리고 신앙 공동체의 정체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 당할 때 하나님은 의인 열만 있으면 뜻을 돌이키시겠다고 말씀한다. 아브라함은 소돔에 대해 중재하며 50명으로 시작해서 열까지 갔는데, 그 밑으로는 더 이상 갈 수 없었다. 적어도 열은 있어야 힘 있는 공동체는 시작되기 때문이다. 의인은 완벽한 이들이 아니다. 다만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다. 실패하고 잠간 하나님을 떠났어도 다시 돌아오는 이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기 위해 서로 힘이 되고 본이 되는 이들이 필요하다. 그러한 이들이 나에게 있는가?
주님, 내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셔서 신앙으로 형제 자매를 이끌며 함께 할 수 있게 인도하소서. 총체적으로 타락한 세상을 볼 수 있게 하시고, 거기에 휩쓸리지 말고, 혹시라도 내 마음을 잠간 빼앗기더라도 다시 곧 돌아오게 하소서. 주님 외에는 갈 곳이 없습니다. 주님 계시기에 외롭지 않음을 고백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