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은 남자나 여자나 동일한가?  너무도 유명한 요 3:16의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과  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는 남자건 여자건 주님을 믿고 그 이름을 부르는 자는 모두 동일하게 구원 받음을 말씀하는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그를 믿는 자’ 그리고 ‘누구든지’ 모두 남성 대명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자와 여자가 구원받는 기준은 다른 것일까?

물론 기본적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외에는 남자나 여자나 구원받는 다른 기준은 없다.  남자나 여자나 모두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죄인들이고 죄인은 그리스도의 은혜로만 구원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경에서 ‘남자’를 의미하는 ‘사람’ 혹은 ‘누구든지’ 등은 남성 대명사일찌라도 남녀 모두를 포함한 것으로 이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 몇몇 구절에서 남자와 여자의 구원에 대해 차이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것은 차별이라기 보다는 기능면에 입각한 이해와 기준이기 때문이다.

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는 말씀처럼 남녀 모두 주 안에서 하나이지만, 그 기능에 대해서는 분명 차이가 있다.  카스트라토가 아무리 아름다운 소프라노로 노래한다 해도 일반적인 것은 될 수 없고 소프라노는 여자의 몫이다.  여자가 아무리 힘이 세다해도 힘쓰는 일은 일반적으로 남자가 더 잘할 수 밖에 없다.  이제 과학이 발달해서 남자도 임신이 가능해 졌다지만 임신은 여자의 몫이다.

오늘 말씀 앞 부분은 사회적 부조리에 대해 다루었고 뒷 부분은 사치로운 삶을 살며 향락을 즐기는 여자들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다.  개정역에서 17절 일부는 ‘여호와께서 그들의 하체로 드러나게 하시리라’고 번역했는데, 킹제임스에는 ‘은밀한 부위가 드러나게 되리라’고, NIV는 ‘그들의 이마가 드러나게 되리라’고 번역했다.  원어 ‘포뜨’의 의미는 사실 ‘이마’ 혹은 ‘정수리’다

여자의 은밀한 부위가 소위 ‘하체’가 아니라 ‘이마’라는 것인데, 고대 문화에서 여자는 그 머리를 덮는 것이 남자의 권위 아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고, 그것이 당연하고 아름답게 여겼기 때문이다.  즉 민망하고 음탕하게 ‘하체’를 언급할 필요도 없이 이마가 드러나는 것 자체가 수치임을 말씀한다.  그 기준이 높은 것이다.  그래서 여자 ‘대머리 (24)’는 수치스러운 것이다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탈모 현상에 대해 더 민감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4 1절은 전쟁으로 남자들이 죽어나가 남녀 성별 비율이 7:1이 되자 일곱 여자가 한 남자를 붙들고 자신들과 살아서 수치를 면케해 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을 기록한다.  여자가 혼자 사는 것은 수치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미 페미니즘 사상이 교회 안에도 들어오게 되는데, 페미니즘이 소위 ‘여성 상위’를 지향한다면 이는 분명 성경에 반하는 것이다.  성경은 소위 ‘남녀 평등’을 말하지 않고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할 것을 말씀하기 때문이다.  또 딤전 2:15는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하며 여자들의 구원받는 삶의 큰 부분은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 안에서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려가는 것임을 분명히 한다.

이러한 말씀이 21세기에도 적용 가능한가?  신앙인은 상황에 따라 사는 이들이 아니라 말씀 따라 사는 이들이다.  이러한 교육이 교회 내에서 전무하기 때문에 기록된 말씀까지도 무관심하게 된다.  그리스도 안에서 남녀가 하나이고 종과 자유자가 하나라는 말씀은 ‘평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는 요 10:30 말씀처럼 ‘하나됨’을 의미한다.  삼위는 평등하지 않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요 14:28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이것을 가지고 여호와 증인들은 주님의 신격을 부인하지만 주님은 분명 하나님이시다.  다만 그 삼위에서 순서는 항상 아버지가 먼저시다)   요한복음 17:11에는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시는데, 이것을 ‘평등'으로 이해하면 큰일인 것이, 마치 하나님 아버지, 주님, 그리고 우리 믿는 이들이 모두 평등하다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녀는 평등하지 않고 그 구원의 삶을 사는 기능 역시 동일하지 않다.

주님, 이렇게 나누는 저 역시도 여러 면에서 생각이 오염됐음을 고백합니다.  오늘도 말씀으로 씻어 주소서.  주님 말씀 외에는 기준이 없음을 시인합니다.  뉘우치고 고치게 하소서.  현실을 살지만 천국의 삶을 살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