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시가서’라고 알려진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 등 5개책들은 분명 전체가 시로 쓰여진 히브리식 시집이지만, 이사야 역시 대부분 시로 기록되었다고 한다. 히브리어 시의 특성은 대조와 비교의 반복인데, 그래서 가끔 언어유희도 나온다. 4장은 매우 짧은 장이지만 중간 중간 비슷한 발음으로 언어유희를 한 것이 눈에 띤다.
4장 1절에도 ‘그 날에’가 있고 2절에도 역시 ‘그 날에’가 있지만 그 둘은 완전히 다른 날이다. (그래서 아마도 생명의 삶은 1절 어제 부분으로 따로 나눈 것 같다) 1절의 그 날은 심판과 멸망의 날이지만, 2절의 그 날은 회복의 날이다. 영화롭고, 아름답고, 거룩하며, 정결케 된 날이다. 개정역에는 정확히 나오지 않았지만 5절의 ‘만드시고’는 원어로 ‘바라’ 즉 ‘창조하다’라는 말이다. ‘창조하다’와 ‘만들다’는 창세기에서 분명히 구분해서 쓰이는데, 아무 것도 없는 것에서 새롭게 존재하는 것이 ‘창조’이다.
그런데 5절의 내용은 이미 출애굽기에서 본 내용이다. 칠백 년이나 지난 얘기를 이사야는 다시 쓰고 있다. 하지만 이 예언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 되는데, 시온의 모든 거처와 집회들 위에 낮이면 구름과 연기, 밤이면 화염의 빛으로 임하는 모습은 전의 것과 비슷하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창조’되기 때문이다. 예전에 여호와께서 광야를 배회하던 이스라엘에게 주신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이 아닌 전혀 새로운 것이라는 의미다.
6절에는 ‘초막’을 말씀하는데, 바벨론 포로 이후 다시 돌아와서 성전이 이미 재건되었고, 이사야 당시 성전은 분명 존재했다. 그래서 앞으로 6장에서는 성전이 언급된다 (물론 이 성전은 하늘의 성전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초막’ 즉 텐트를 말씀하시는데, 백성들의 거주를 위한 많은 텐트가 아니라 단 하나의 (단수) 텐트, 초막이다. 구름, 연기, 화염의 빛이 있고 또 초막이 있다. 이러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의미이다. 환경은 거칠지라도 그 환경을 바꾸기 보다는 그 안에서 지키시고 함께 하시겠다는 의미이며, 특히 완전히 새로운 새로움으로 하시겠다는 뜻이다.
고후 5:17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라고 말씀하는데, 겉으로는 그리 달라보이지 않을지라도 (그래서 '보라'는 명령을 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완전히 새롭게 창조된 존재임을 선포한다. 인간이 처음 창조 되었을 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음 받아 원래는 ‘인류’가 아니라 ‘신류’라고 할 수 있었지만, 타락으로 인해 ‘마귀류’가 되었다가, 이제 그리스도 안에 들어옴으로 ‘한 새 사람 (엡 2:15)’이 되었다.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롬 6:5),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 (벧후 1:4)’가 된다.
주님, 새로운 하루를 주심을 감사합니다. 어제와 비슷하게 보여도 오늘 이 시간은 새로운 시간임을 압니다. 죽고 부활한 날이고, 은혜 받을 만한 때이며, 구원의 날임을 선포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는 전과는 다른 존재임을 분명히 알게 하소서. 나의 생각과 습관과 기질은 변화가 더디지만, 주님의 새 창조의 역사는 지금 이 시간에도 내 안에서 힘있게 이루어 지고 있음을 알게 하소서. 오늘 주를 의지하는 모든 형제 자매들 안에서 비추시며 정결케 하시고 힘과 생명을 공급하여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