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7장은 한국전쟁 (6.25 전쟁) 상황 혹은 현재 대한민국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아람 (시리아)과 북이스라엘이 동맹을 맺고 앗수르를 의지하던 남유다에 대해 선공을 가하지만 이기지 못하고 후에 오히려 그들은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한다.  민족주의적인 면에서 보자면 북이스라엘이 줏대 있어 보인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강대국 앗수르를 의지한 아하스 왕은 이사야에게 책망을 듣게 되는데,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처럼 영적으로 바로 서지 못하고 여러 악을 행했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의 일생은 평안했다.  더우기 그의 이름은 웃시야와 요담과 더불어 주님의 계보에도 오른다.  물론 주님의 계보에 오른 이들 중에도 문제있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이렇게 생각해 보면 과연 무엇이 옳은가 헷갈린다…

생명의 삶 해설에는 ‘성도는 사람의 계획에 낙심하지 말고, 세상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라고 하는데, 당시 유다가 처한 상황은 ‘세상의 위협’만은 아니었다.  매우 애매한 상황이며 교묘한 위협인데, 물론 사마리아의 혼혈 문제는 있겠지만 그래도 친족에 의한 위협이다 (당시 아하스가 북이스라엘에 대해 친족 개념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아하스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을 그리 신뢰하지는 않았던 것 같지만, 적어도 이사야가 없었더라면 아예 하나님의 뜻을 몰랐을 것이다.

9절은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고 말씀하는데, 굳센 믿음은 행동을 낳는다.  섣불리 움직이거나 동요하지 않고 굳세게 견디며 행한다.  문제는 믿음 생활에서 경험하는 많은 도전이 믿는 것 자체 보다는 무엇을 믿느냐에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믿어야 하는데, 과연 지금 이 상황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모를 때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롬 12:2에는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말씀한다.  굳게 붙잡고 믿을 것이 소위 ‘하나님의 말씀’이어도 이스라엘 역사 중에 이방과 연합할 것인지, 항복할 것인지, 혹은 대항할 것인지는 때에 따라 달랐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오늘 말씀 중 하나님의 뜻은 그의 명령에서 볼 수 있는데, ‘조심하고 조용하며 두려워 말라, 굳게 믿음으로 굳게 서라' 등이다.  오늘을 살며 지켜야 할 명령이고, 이러한 명령의 결국은 엡 6:13 말씀처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즉 ‘서기 위함’이다.  지금 나는 믿음에 서 있는가, 아니면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아’ 있는가? 

주님, 주님 말씀에 따라 살기 원하지만, 때에 따라 어떤 말씀을 적용할지 헷갈릴 때가 많음을 고백합니다.  말을 해야하는 때인지, 입을 닫아야 할 때인지, 행동해야 할 때인지 아니면 멈춰야할 때인지 모르겠습니다.  성령께서 제 안에서 또 옆에서 말씀하여 주소서.  그 음성을 제가 분명히 듣지 못하고 따르지 못한다 해도 후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드러나고 모든 것이 은혜임을 깨닫고 서게 하소서.  모든 것이 주님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