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마누엘’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말이지만, 구약에서는 지난 이사야서 7장과 오늘 8장, 그리고 신약에서는 마태복음 1:23 단 세 구절에만 등장하는 말이다. 신약에서는 말 그대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이고 좋은 의미로 여기지만, 이사야서는 그리 좋지 않은 상황에서 언급된 것이 눈에 띤다. 물론 임마누엘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 가운데 임재하심을 말하지만, 구약의 여러 정황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는 상관없는 삶을 살고 오히려 하나님을 거역했던 이스라엘 백성을 보여준다.
오늘 말씀은 7장 내용과 흡사한데, 우선 앗수르의 제국화를 통해 아람과 에브라임 (북 이스라엘)이 심판을 받을 것을 말씀하시고, 그 후에 이어서 남유다 역시 심판을 받을 것을 말씀한다.
흥미로운 것은 7장 2절은 ‘어떤 사람이 다윗의 집에 알려 이르되 아람이 에브라임과 동맹하였다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과 그의 백성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더라’고, 즉 유다 아하스 왕이나 백성이 매우 두려워했다고 기록하지만, 6절은 ‘이 백성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기뻐하느니라’고 기록한다. 바로 윗 동네 아람과 에브라임 동맹군의 위협이 닥쳤는데 동일한 ‘이 백성’은 자신들이 누리는 평안은 버리고 위협이 되는 르신과 르말리야를 기뻐한다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말씀한다.
멀리 앗수르의 소문은 들리지만 바로 눈 앞의 동맹군은 더 위력있어 보인다. 자신들의 ‘천천히 흐르는’ 어떠함은 매력적이지 못하다. 뭔가 강하고 자극적인 것이 훨씬 좋아보인다. 결과적으로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같은 평안은 그와는 대조적인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 곧 앗수르 왕과 그의 모든 위력 (7절)’으로 인해 끊어져 버린다.
한글 여러 번역본에는 8절의 ‘임마누엘’이 중간에 오지만, 영번역이나 원어에서는 마지막에 온다. 즉 ‘… 오 임마누엘이여~!’ 라는 것이다. 이것은 탄식의 호명이다. ‘인간아~!’ 혹은 ‘사람아~!’ 라고 부를 때 금수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인데, 여러 복잡한 상황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오, 임마누엘아~!’ 라고 부르신다. ‘너희는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인데 왜 다른 것에 눈을 돌리니?’ 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아~!’ 라고 부르신다. 이러한 정체성은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확인한다.
주님, 주님은 임마누엘이시고 우리 역시 임마누엘임을 봅니다. 주님과 연합했음에도 많은 상황 속에서 우리 마음은 다른 것을 보고 또 의지하며 기대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소서. 우리에게 다시 ‘오, 임마누엘아!’ 라고 부르소서. 오늘 부르시는 주의 음성을 듣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