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는 마 11:8에서 제자들에게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은 왕궁에 있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에게는 주님을 따르다가 '천국'이 도래할 때 한자리씩 차지하려는 마음도 분명 있었지만, 무언가 귀한 것을 추구하는 마음도 있었음을 일깨워 주신다. 베드로는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 6:68)'라고 고백한다.

주님을 믿는다고 항상 모든 것이 다 잘되고 건강하고 평안하게 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편안함'이 아니라 '평안'이고, 이 세상의 복이 아니라 천국의 '팔복'이며, 짧은 인생에서 부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영생'이다. 신앙이 수단이 되어 그 목적이 부귀영화라면 주님의 제자들은 모두 저주를 받은 것이다.

이사야는 9-10절에서 이방 나라들이 단결해도 망할 것을 예언하는데,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부분 역시 '임마누엘'인데, 명사형 보다는 서술형식으로 번역된 것은 'for' 에 해당하는 단어가 앞에 있기 때문이다. 원어에는 '.. 그래도 서지 못하리니 대게 임마누엘이라' '대게'라는 말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로 번역된다.

문제는 임마누엘이 있음에도 결국 유다 백성은 하나님을 떠나 계명을 저버리고 망한다. 그들이 두려워할 대상을 잘못 알았기 때문이다. 13절은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를 너희가 두려워하며 무서워할 자로 삼으라'고 명령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임마누엘은 '걸림돌과 걸려 넘어지는 반석, 함정과 올무가 되 (14)'신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걸려 넘어질 것이며 부러질 것이며 덫에 걸려 잡'히게 된다 (15).

바울은 이 말씀을 인용하면서, 9:32-33 '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 기록된 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고 기록했다. 참된 임마누엘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은 그를 의지하는 주의 백성들에게 구원이 되시지만 자기 자신의 의를 의지하는 이들에게는 걸림돌이 되신다.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는데, 주님 주신 자유함은 죄인된 내가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아니다. 그래서 내 안에서 계속 싸운다. 내주하는 그리스도, 임마누엘은 나에게 힘과 용기만 되지는 않으신다. 죄된 기질과 항상 싸우시며 내가 헛된 것을 구할 때는 나로 좌절을 경험하게 하신다.

주님은 요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말씀하셨는데,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해서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해야 한다. 주님의 뜻 만이 남을 때까지는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들은 내게 걸림돌만 된다. 나의 이기적인 바람은 주님 안에서 모두 없어져 버려야 한다.

오늘도 싸움의 날이고 갈등의 날이다. 그래도 임마누엘이다. 그래서 임마누엘이다.

주님, 주님은 우리의 곁에 계시고 내 안에 계심을 믿습니다. 육성으로 그 음성을 들을 수는 없지만 주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항상 말씀하시며 우리의 죄된 기질과 항상 싸우심을 압니다. 주님의 성실하심이 크십니다. 이러한 나의 죄 된 것들이 완전히 망할 때까지 계속 내 안에서 역사하시고 싸우소서. 내가 원하는 것들을 하지 못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