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장은 계속되는 모압에 대한 심판의 말씀이다. 15장 마지막 절은 ‘디몬 물에는 피가 가득함이로다 그럴지라도 내가 디몬에 재앙을 더 내리되 모압에 도피한 자와 그 땅에 남은 자에게 사자를 보내리라’고 하는데, 도피한 자들과 남은 자들 조차도 사자들(짐승)을 보내 멸절하실 것을 말씀한다.
1절의 ‘양’은 거의 모든 주석에서 남유다 주권자에게 바치는 ‘조공’으로 해설했다. 문제는 남유다 역시 코가 석자인데 이제 와서 조공을 바치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겠다. 그래서 원어 해설의 도움을 얻고 묵상을 하면서 15장과 연결하고 2절과 연결해 보니 이 ‘어린양’은 소위 ‘희생양’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러한 희생양을 준비해도, 열심으로 종교성을 발휘해도 이제는 ‘소용없(12절)’을 것을 말씀한다.
소위 ‘희생양’은 영어로 scapegoat, 즉 엄밀히 말해 양이 아니라 염소이고, 광야에 풀어놓아 떠돌다가 죽임을 당하게 하는 제물인데 레위기 16장에만 나오는 말이다. 개정역은 레 16:10을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 대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지니라’고 번역했는데, 원어 ‘아사셀’ 그대로 가져왔다. 여러 영번역에서는 scapegoat라고 번역했지만 원어로는 그냥 ‘아사셀’이고 그 의미는 ‘바위투성이의 강한’이라고 한다. 즉 염소를 추방하던 곳은 ‘바위’투성이인 ‘광야 (1절)’다. ‘셀라’ 역시 ‘아사셀’과 비슷한 ‘바위’라는 뜻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제물로는 양을 드리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레위기와 민수기에는 속죄제물 혹은 화목제물로 염소를 드리는 대목이 꽤 많이 나온다.
아무튼 문제는 1절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인데, 원어에서 2절과 연결하면 이해가 쉽다. 결론적으로 ‘그리 해봤자 소용없다’라는 의미다. 1절과 2절이 나뉘어져 있어서 따로 생각하게 되지만 붙여 놓으면 다음과 같다. ‘너희는 그 땅 통치자에게 그 어린양을 보내라 셀라부터 광야를 지나 시온 산의 딸들에게로. 대게 그것(어린양)은 보금자리에서 추방되어 방황하는 새가 될 것이다. 모압의 딸들도 아르논 나루에서 그와 같이 될 것이다’ 즉 어린양을 소위 ‘희생양’처럼 보내봤자 통치자에게 이르지 못하고 유리하는 새 같이 될 것이고 결국 모압의 딸들 역시 모두 광야에서 죽임을 당할 것을 의미한다.
모압에게 여러 가지로 해보라고 (3-4절) 말씀하지만 그래도 모두 소용없고, 특히 모압은 마지막 해결책으로 ‘자기 성소에 가서 기도’ 즉 그들만의 종교적 열심을 내보지만 ‘소용이 없으리라’고 말씀한다. 결국 ‘삼 년’이라는 상세하고 확실한 기한까지 말씀하며 모압은 거의 전멸 당할 것을 분명히 한다.
이러한 와중에도 갑자기 생뚱맞게 ‘다윗의 장막’을 말씀하는데, 메시야의 모습이다. 놀랍게도 주님의 계보에는 모압 여인 룻이 포함되어 있다. 인간의 모든 노력은 교만과 더불어 결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는, 소용없고 효과적이 못한 것이지만, 그 가운데 주님의 은혜는 저주 받은 모압 안에도 흐르고 있다.
주님, 주님을 떠나서는 우리 인생은 유리하는 자와 같음을 고백합니다. 아직도 광활한 우주에 혹시 생명체가 있는가 해서 찾아 헤매는 노력은 주님을 떠나서는 우리가 길을 잃고 헤매는 것임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임을 압니다. 우리의 노력은 그치고 주님의 효능있고 효력있는 보혈을 다시 적용합니다. 주님과의 화목케 됨은 우리의 노력에 있지 않고 오직 주님의 공로에 있음을 봅니다.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다시 담대히 나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