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예언서들의 내용이 일목정연하게 시간별로 정리가 되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 계시록의 여러 사건들도 분명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발생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 의미나 상징을 정확히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이사야서 역시 내용 상으로 그러한 느낌을 받는데, 바벨론의 멸망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 13장 부터 기록된다. 오늘 말씀에는 특히 그 멸망이 임박했음을 말하기 위해 ‘회오리 바람 (1절)’ ‘약탈, 에워쌈 (2절)’ ‘해산, 엄습 (3절)’ ‘서광 (4절)’ ‘파수 (5,6,8절)’ ‘마병대 (7, 9절)’ ‘함락, 함락 (9절)’ 등등의 단어로 그 상황을 묘사한다.
이사야서는 물론이고 여러 성경에서 열방 및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는 끊이질 않는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만일 그러한 사실만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면 그렇게 예언들이 반복되고 또 거듭 되풀이 되어야 할 필요가 없다. 이사야의 예언을 들은 사람들은 ‘아니, 또 그 얘기야?’ 라고 느꼈을 것 같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한 번 가지고는 듣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수백번을 얘기해도 들을까 말까다. 니느웨 백성들이 단 한번 요나의 말을 듣고 회개한 것은 정말이지 놀라운 사건이다. 그러한 예는 찾기 정말 힘들다. 아이들을 양육할 때 한번 듣고 순종하는 자녀들이 있을까? 있다면 정말 그 부모에게 복이겠지만, '일심동체'라는 부부 사이 조차 한 번 얘기하면 이해하고 들어주는 경우가 많지 않다. 오히려 자기 마음대로 해석해서 이해한다. 그러다 보면 결국에는 말하는 것을 포기하게 된다. 소위 ‘아담의 침묵’이다 (물론 이브도 답답하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과 열방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계~속해서 그의 지치지 않으시는 열심으로 수 십번 수 백번 경고하신다. 비슷한 얘기를 하고 또 하신다. 관계는 대화이고 대화는 싸움이 일더라도 계속되어야 한다.
주님, 많은 문제들이 잘못된 대화 방법이나 혹은 그나마 그조차도 단절된 이유로 발생함을 압니다. 두려움이 있고, 자존심이 발동하며, 좌절감을 낳습니다. 주님의 묵시가 그칠 때 인간도
헤맬 수 밖에 없음을 압니다. 하지만 주의 백성에게 말씀하시고 또 말씀하시며 경고하시고 또 경고하심을 감사합니다. 우리의 이해나 순종이 더디더라도 주님은 미리 우리를 예정하시고 계속해서 이끄심을 믿습니다. 우리 가정을 지키시고, 공동체를 살리시며, 교회를 세우소서. 말씀하시는 주님처럼 우리도 말해내게 하소서. 나의 의견은 내려놓고 주님의 생명과 인격을 말할 수 있도록 우리 안에 성장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