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서 본 것으로 기억하는데 유대인들이 포로 수용소에 잡혀온 가운데 내일을 알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아이가 열심히 무엇인가 팔며 돈을 모으고 있었다. 이를 본 한 노인은 ‘쓸 데 없는 짓’이라고 한탄했다. 내일이면 죽을지도 모를 판에 돈을 모으는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절은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라고 말씀하는데, 객관적으로 보면 애굽으로 도움을 구하러 가는 이들은 ‘쓸 데 없는 일’을 하는 것이지 별로 큰 죄를 짓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들에게 엄중히 경고하신다.
그 이유를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첫째로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의지하고 싶은 것은 눈에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말과 병거와 마병이다. 살아계신 여호와를 마치 없는 것 처럼 무시한다.
두 번째 이유는 그러한 일을 행함으로 하나님 백성의 하나됨을 깨드리기 때문이다. 분리를 가져오고 다른 이들을 낙담하게 한다. 자신들만 믿음에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믿음도 흔들고 시험에 들게 유혹한다. 그러고 보면 이것이 바로 발람이 한 일 같다. 주님의 교회 안에 분리와 당짓는 죄가 들어오면 그러한 일을 벌이는 이들은 물론 심각하고 더러운 죄를 짓는 것이지만 그러한 일을 당하는 이들, 즉 하나를 지키려는 이들 역시 분리의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고 보면 죄라는 것은 ‘쓸 데 없는 일’이다. 목적없는 일이고 허망한 일이다. ‘하마르티아’다. 주님께서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하신 말씀이 정말 맞다. 주님을 떠나서 그 어떤 좋고 착한 일을 한다해도 다 쓸 데 없는 일이 되고 만다.
주님, 쓸 데 없는 일을 함으로 화를 자초하지 않기 원합니다. 나의 우상을 버리고 주님만을 섬기기 원합니다. 내 마음의 우상을 제거하소서. 주의 백성을 보호하시기를 새가 날며 새끼를 보호하는 것 같이 하시는 주님의 보호하심을 온전히 의지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믿음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