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사는 문제에 별 영향을 받지 않으면 생활에 걱정이나 염려가 적어지는데, 결국은 안일하게 되어 영적인 것에는 무감각해진다.  주님께서도 이러한 일에 대해 눅 21:34에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고 말씀하신다.  생활의 염려에서 벗어나면 방탕함과 술취함에 빠질 수 있고,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 ( 4:19)’의 문제가 생긴다.  세상에 대한 걱정은 믿는 이들이 거부해야 하지만, 영적인 것에 대한 근심은 영적 예민함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고후 7:10).

개정역 12절은 ‘그들은 좋은 밭으로 인하여 열매 많은 포도나무로 인하여 가슴을 치게 될 것이니라’라고 번역했는데, 여러 영번역도 그렇게 번역한 것들이 있지만 히브리 원어나 킹제임스역은 ‘가슴을 치라’ 부분을 다르게 기록했다.  원어의 기록은 ‘젖가슴을 인하여 그들은 통곡할 것이다 좋은 밭을 인하여 열매 많은 포도 나무를 인하여’ 라고 되어 있다.  ‘가슴’의 원어는 ‘샤드’인데, 이것은 남자의 가슴 즉 애통할 때 ‘치는’ 가슴이 아니라, 젖이 나오는 여자의 유방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안일한 여자들은 젖이 풍부한 젖가슴과 좋은 밭, 그리고 열매 많은 포도 나무를 더 이상 누릴 수 없기 때문에 통곡하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 중에 이 ‘샤드’가 있다는 것인데, 바로 ‘엘 샤다이’이다.  보통  ‘전능하신’ 이라고 번역됐는데, 아기에게 젖을 풍부히 공급하는 어머니의 젖가슴 처럼 우리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가리킨다.  이러한 하나님께서는 특히 그 영으로 공급하시며 (15) 아름다운 밭을 숲으로 여길 정도로 전에는 광야였던 곳을 아름다운 밭으로 바꾸신다.  이것은 인간의 죄 때문에 땅이 저주를 받은 것을 회복하심을 의미하는데, 그 분의 영으로 말미암는다.

주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다 ( 6:63)’ 라고 말씀하셨는데, 주님은 말씀이신 하나님이시고, 말씀으로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 ( 1:3).  그리고 모든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은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 ( 1:16)’다.  전능하신 하나님 엘샤다이는 보이지 않는 것에서 보이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 즉 영으로 창조하셨다 ( 11:3).

주님, 먹고 사는 것에 큰 문제가 없다고 안일함에 빠지지 않도록 영적으로 더 민감해지기 원합니다.  나의 공급되시는 주님을 붙잡습니다.  오늘도 나에게 생명의 젖을 공급하시고 그 영으로 새롭게 하소서.  주께서만 온전한 나의 만족되시기 원합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오늘도 새롭게 창조하소서. 주께서 명하시고 선포하소서.  쓸모 없는 나의 어떠함에서 영으로 살리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