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말씀 내용은 열왕기하 19-20장에도 나오는데, 열왕기는 역사서이기 때문에 시간별로 기록되어 조금 더 이해가 쉽다.  그에 비해 이사야서는 예언서이기 때문이지는 몰라도 하나님의 예언이 먼저 나오고 그 후에 부언 설명으로 히스기야에 대해 설명하는 식으로 38장은 기록됐다.  그래서 시간적인 면으로는 조금 헷갈릴 수 있다.  예를 들어 21-22절 말씀은 원래 8절 말씀 앞에 나와야 더 이해가 빠를 수 있는데, 열왕기하 20장에는 순서가 그렇게 기록되었다.

이사야가 이런 순서로 기록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역사기록자가 아니라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 (1)’ 였기 때문이다.  별볼일 없는 목자 혹은 농부 ( 7:14) 아모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예언을 시작했고, 그의 아들 이사야는 그 뒤를 이어 힘든 길을 간다.  하지만 이사야는 그의 아버지가 받은 부르심을 귀히 여겼고, 그 뒤를 이어 예언을 했던 ‘선지자’에 대한 분명한 정체성이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을 기록할 때 시간적 관점 보다는 (물론 시간을 아예 무시할 수는 없지만) 시간을 초월한 하나님의 말씀과 예언에 대해 기록했다.

모든 하나님 말씀이 우리가 이해하기 쉽도록 시간별로 잘 정리되어 기록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창세기로 시작하는 66권 성경은 비교적 시간별로 편집이 되었지만 모세 5경이 먼저 기록되었는지 아니면 욥기가 가장 오래된 성경인지는 지금도 학자간 견해가 갈리고 있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사람들은 성경을 연구하고 조직신학이나 문답 형식으로 정리해 놓기도 하지만 예언의 말씀인 하나님 말씀은 우리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믿음을 요구한다.  (그렇다고 무조건 믿으라는 것은 아니다.  주님께서는 히스기야에게 그의 예언에 대한 증거까지 선택하라 하신다.) 

하나님 말씀은 매우 주도적이다.  하나님께서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의 입장으로는 객관적이라는 뜻일 수 있는데, 특히 오늘 히스기야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은 나와는 별 상관이 없는 것으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도 하시는 분이심을 먼저 기록하고 9절부터 히스기야의 걱정과 근심 그리고 주께 기도함으로 구원에 대한 확신과 찬양을 기록한다.  예언은 객관적인 면이 많지만 이를 나의 것으로 받을 때 내 안에서 주관적으로 역사한다.  바울은 살전 2:13에서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고 기록한다.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에게 베푸신 은혜는 믿음으로 받을 때 나의 것이 된다.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한다.

주님,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기 원합니다.  많은 부분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록한 구약의 내용을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나의 것으로 삼습니다.  우리에게는 히스기야가 고백했던 것 보다 더 귀한 것들이 있음을 감사합니다.  주님의 부활이 나의 부활이 되었고, 주님의 권세가 나의 권세가 된 것을 더욱 알게 하소서.  사람이신 그리스도로 (딤전 2:5) 말미암아 나 역시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벧후 1:4) 자가 되었음을 주관적으로 취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