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구약의 많은 부분과 비슷한 내용이지만 하나님의 안타까워 하심을 조금 더 느낀다.  심판의 경고를 말씀하시고, 인간의 노력과 방법으로 절대적이지 못한 제사를 드린 것에 대해 인정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시지만, 이러한 말씀이라도 하시는 것은 아직도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고 관심을 접지 않으시고 소망을 거두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만일 포기하셨다면 정말 ‘내버려 두사 ( 1)’가 되었을텐데, 아직도 이 충성되지 못한 백성에게 안타까운 마음으로 말씀하고 계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소위 ‘여호와의 날’에는 모든 것이 제대로 될 것이고 하나님께서 직접 통치하시며 악을 심판하시고 그의 백성을 회복시키시리라 생각했다.  문제는 그들 자신이 하나님을 찾지 않고 악을 행하면서 여호와의 날을 갈망 (desire 18)했다는 것이다.  나의 편의를 위해, 나의 기준으로, 내 생각에 나는 이 정도면 됐다 라고 생각하며 여호와의 날 오기를 기대하지만, 그 날이 심판과 보응의 날이고, 나는 천연적인 면으로서는 상 받기 보다는 심판을 면할 수 없는 정말이지 두려운 날이다.

하나님을 섬긴다면서, 주일은 거룩히 지킨다면서 행하는 모든 노력들을 만일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신다면, 그것은 나름 말씀대로 한다고 하지만 동시에 숨은 죄악들을 아직도 사랑하고 거기에 소망을 두고 그것들을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25, 26).  절대적이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이들은 ‘사로잡혀 가게 (27)’ 되는데, 진리를 앎으로 자유케 하는 것 ( 8:32) 에서 떠나 다시 죄의 종으로서의 삶을 산다.

복음이 진정 복음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반드시 필요한데, 회개와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복음은 변질되고 다시 면죄부를 시도하는 꼴이 되고 만다.

주님, 복음이 능력되지 못하고 기쁨되지 못하는 것은 복음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임을 압니다.  주님 앞에 절대적이지 못하고 주님 외에 다른 것에 소망을 두며 그들을 은밀히 즐기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면서 상황에 대해 귀찮아 하고 주님께서 나를 위해 모든 것을 제대로 회복시켜 주실 것을 어리석게 기대합니다.  이러한 헛된 바람에 십자가를 적용합니다.  저희들의 절대적이지 못한 태도에 안타까워하시는 주님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는 저희 되게 하소서.  공감만이 아니라 행동하게 하소서.  여호와의 날만 갈망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갈망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하루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