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풀이 움 돋기 시작할 때 모든 것을 먹어치우는 메뚜기 재앙을 보여주시고 또 큰 바다 (이방)를 삼킨 불이 육지 (이스라엘) 까지 먹으려 하는 재앙을 보여 주신 것에 대해 아모스는 두 번이나 그 뜻을 돌이키시도록 탄원한다. 흥미로운 것은 아모스가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라고 말한 것인데, ‘구원하소서’ 혹은 ‘용서하소서’ 라고 했으면 됐을텐데 ‘어떻게 서리이까’ 라고 말씀 드린다는 것이다.
'서다'는 원어에서 ‘야쿰’으로 되어 있는데, 이 말은 ‘일어서다’의 ‘쿰’에서 왔다. 주님께서 ‘달리다쿰!’ 하신 말씀과 같다. 즉 ‘일어서다’는 단지 주님의 심판을 피해서 목숨만 부지하는 것이 아니라 ‘회복’을 의미한다. 여호와께서는 ‘싹 쓸어 버리는’ 심판을 말씀하지만 아모스는 그 가운데에서도 회복을 탄원한다.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그 뜻을 돌이키신다. 이스라엘에는 분명 심판이 있을 것이지만 그 가운데 주를 좇는 이들이 함께 망하는 것이 아니라 ‘산당, 성소, 여로보암의 집 (절)’이 심판 받는다.
‘일어서다’ 라는 말은 ‘회복’을 의미함과 동시에 ‘싸움의 자세’도 의미하는데, 원수를 대항하여 싸울 때 우리는 일어나야 한다. 꽤 오래전에 워치만 니의 ‘좌행참’이라는 작은 책자의 내용은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앉고, 걷고, 서는’ 모든 자세는 그 의미가 있다. 특히 엡 6:13의 ‘서는’ 자세는 회복되어 원수를 대적할 때 취해야 할 자세이며, 모든 싸움을 끝내고 승리한 자세다. 아무리 전신갑주를 입어도 일어서지 않으면 싸울 수 없다. 또 싸우고 승리하지 않으면 서 있을 수 없다. 아모스는 심판을 말씀하시는 여호와께 야곱이 다시 일어설 것을 탄원한다.
주님, 주님 앞에는 의로운 이가 없음을 압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탄원처럼 주의 의를 구하는 이들을 주님을 조롱하고 비방하는 이들과 함께 벌주시는 것은 주님의 의가 아님을 압니다. 그 모습이 어떠하든지 현재 한국의 어려운 상황 중에 심판받을 이를 심판하시고 살려주실 이들을 살려 주소서. 그 가운데 주님의 용서하심과 구원과 회복의 선포가 있게 하소서. 회개의 영을 보내소서. 동일한 회개의 영이 나의 삶 가운데도 항상 있게 하소서. 주를 위해 일어나 싸우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