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는 악한 왕 여로보암과 친분이 두터웠던 전형적인 정교유착의 표본, 권력을 탐하던 종교 지도자다. 그의 이름은 흥미로운데, '용기, 강함, 담대함' 등을 의미하는 '아메츠'와 '주님'을 의미하는 '야'의 복합형태로 걸핏 보면 제사장에 걸맞는 이름이지만, 그의 행태를 보면 여호와를 참된 주님으로 모시지 않고, '벧엘의 제사장' 즉 여호와께서 정하신 유일한 성전의 도를 벗어나 제 멋대로 종교를 만든, '권력'이 '주'가 된 제사장이다. 주님께서는 마 23:4에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라고 말씀하시며 이와 비슷한 행태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 대해 비판하셨다. 종교의 힘과 세상 권력을 이용해 사람들을 억압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선을 행할 마음도 없고 삶에서도 다른 이들에 무거운 짐을 지우기만 한다.
원어는 조금씩 다르지만 재미있게도 우리 말로는 둘 다 자음은 ㅇㅁㅅ이다. 하지만 그들이 추구하고 의지하는 것에 따라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아모스'는 그 어원이 '아마스'로 그 의미는 '짐을 지다'이다. 단번에 '십자가'가 생각나고 또 '짐을 서로 지라 (갈 6:2)'는 말씀도 생각난다. 아모스는 권력과는 거리가 멀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선지자로 여기지도 않았다. 다만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했다. 하지만 거기에는 세상 권력이나 종교의 힘보다 더욱 큰 확신이 있었는데, 그것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아마샤를 심판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람은 세상의 술수나 힘을 빌어 보복하지 않는다. 다만 여호와의 말씀에 대적하는 것에 대해서 만큼은 거룩한 분노를 참지 않는다.
기독교는 정교분리를 말하지도 않지만 정교유착은 절대 불가하다. 기독교가 돈과 더불어 권력을 탐할 때 더 이상 하나님은 주인 되지 못하신다. 기본적으로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다. 밤하늘에 새빨간 십자가가 하늘을 수놓아도 정작 세상에서 십자가를 지지 못한다면 결국은 'ㄱㄷㄱ' 개독교가 되어 버린다.
주님, 반드시 제가 져야만 하는 짐이 있고, 또 서로 지어야 하는 짐들도 존재함을 압니다. 그리스도인의 삶, 제자의 삶은 자신의 십자가를 짐으로 서로 사랑하는 삶임을 또한 압니다. 사랑함으로 서로의 짐을 질 수 있도록 우리 안에서 더욱 풍성하소서. 이 길은 십자가를 지는 고난의 길이고, 이를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주님을 의지하며 주의 은혜를 풍성히 누리는 것임을 압니다. 교회에 많은 문제가 있지만 그래도 교회는 유일하게 세상의 빛과 소금임을 압니다. 주님 영광 받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