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풍이 불자 일이 술술 풀리는줄 알았지만 머지 않아 갑자기 유로굴로라는 광풍이 몰아친다.  유로굴로 혹은 유라굴로는 북동풍인데, 당시 지중해를 항해하는 선원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광풍을 만나면 배가 파손되지 않게 취해야 할 몇가지 조치가 있는데, 먼저 돛을 내리는 것이다.  순풍에는 돛이 요긴하고 멋지게 보이지만, 광풍에는 거추장스러운 것이 되어버린다.  내가 자랑하고 나에게 요긴하게 생각되던 것들이 인생의 광풍을 만나면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나를 위협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더 이상 나의 삶을 내가 이끌지 못하고 바람에 끌려 다니게 되는데, 15절은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가다가’라고 기록한다.  가는 대로 두고’ 라는 부분은 원어로 πιδδωμι주다, 포기하다’를 의미한다.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16-17절은 ‘거루를 잡아 끌어 올리고’라는 부분이 있는데, ‘거루’ 즉 작은 보트를 고대에는 큰 배 뒤에 묶어서 끌고 다닌 것으로 보인다.  보통 때는 별 탈없이 끌려 오지만, 광풍이 불 때는 작은 것이라도 이리 저리 휘몰아치기 때문에 본선에 큰 타격을 가할 수도 있다.  그래서 그 광풍 속에서 거룻배를 힘들게 잡아서 끌어 올린다.  또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라고 하는데, 역시 그 거센 풍랑 속에 선체를 줄로 둘러 감는다.  이러한 것들은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다.  37절은배에 있는 우리의 수는 전부 이백칠십육 명이더라’고 기록하는 것으로 보아 작은 배는 분명 아닐텐데 배가 파도 때문에 뒤흔들려서 깨질 것을 방지하기 위해 육중한 선체를 줄로 휘감는 것은 아마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원어에서는도움들 βοθεια’을 받았다고 하는데, 아마도 선원 몇이 줄을 가지고 바다로 뛰어들어 잠수해서 배를 휘감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노력들과 더불어 17절은 ‘연장을 내리고’라고 기록하는데 이 ‘연장’은 단수로서 선원들이 사용하던 ‘도구들’이 아니라 아마도 ‘돛’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며, 광풍으로 끌려 다니다 이제야 돛을 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냥 쫓겨’ 갈 수 밖에 없었고, 다음 날에는 (짐들을 버려서) 배를 가볍게 했고, 셋째날은 아예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버’렸는데, 킹제임스는 ‘배의 밧줄 감는 기구’라고 번역했다.  이 단어는 위의 ‘연장’과 성(gender)만 다른 같은 단어로 이제는 순풍이 불어도 배는 더 이상 방향을 잡을 수 없을 것을 의미한다.  위기가 닥칠 때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가장 최후까지 남을 것이 무엇인지 일깨우는 대목이다.  우리는 생명을 위해서는 속도고 방향이고 다 필요없고 단지 물 위에 뜨기만 하면 된다.  이를 위해서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 ( 12:1)’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

20절은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고 기록하는데, 항해에서는 선체 자체도 중요하고 선원들의 경험도 중요하지만, 배가 어디쯤에 있는지, 자신의 위치를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그것은 ‘상대적’인 위치로서, 해와 별들 즉 천체를 봄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러한 표식들이 없으면 마치 안대를 한 것 처럼 내가 어디 쯤에 있는지 결코 알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지금 영적으로 어디에 있는가?  나의 위치를 알려주는 천체는 과연 무엇일까?  하늘의 해와 별들은 며칠 동안 보이지 않을 때가 있지만 내 길의 빛인 영원하신 주님의 말씀은 내가 어디에 있는지, 내가 나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정확히 보여 주신다.

바울은 이렇게 구원이 끊긴 것 처럼 보일 때 소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나를 소유하신 하나님 곧 내가 섬기는 분의 천사가 이 밤에 내 곁에 서서 이르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반드시 카이사르 앞에 가야 하리라. 보라,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느니라 (23-24, 킹제임스)’고 말하는데,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소유하셨고, 자신은 그 분을 섬긴다고 말한다.  주의 사자가 지금 (현재 진행형) 말하는데, 바울에게 두려워 말것이며 그 이유는 반드시 시저 앞에 가야 할 것을 밝힌다.  이 단 하나의 이유로 바울의 조언을 듣지 않은 모든 함께 한 이들의 목숨 역시 보존하신다.  하나님의 사람은 자신의 목숨은 물론이고 같은 배를 탄 이들의 생명도 보존케 하며 또 그들을 구원으로 인도한다.

주님, 광풍을 통해 과연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배울 수 있음을 봅니다.  주님은 부활이고 생명이시며 주님을 아는 것이 영생임을 고백합니다.  내가 주님을 주라고 부를 때 주는 나를 소유하신 법적인 소유주이시며, 따라서 나는 주님을 섬기는 종임을 깨닫습니다.  내가 가는 곳마다 주님의 구원이 나타나게 하소서.  얽매이기 쉬운 것들을 하나 하나 정리할 수 있도록 인도하소서.

페북 나눔:

광풍을 만나면 멋지고 요긴하게 보이던 것들이 이제는 더 이상 필요 없는 거추장스러운 것들, 오히려 나를 위협하는 것들임이 드러납니다.  위기가 닥칠 때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가장 최후까지 남을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생명을 위해서는 속도고 방향이고 다 필요없고 단지 물 위에 뜨기만 하면 됩니다.  항해를 위해서는 천체를 볼 수 있어야 하지만, 해도 별들도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참 빛이신 그리스도를 의지할 수 있습니다.  나의 위치는 ‘절대적’이 아니라, 천체를 보고 알든, 하나님의 살아계신 말씀을 통해 알든 ‘상대적’입니다.  하늘의 해와 별들은 며칠 동안 보이지 않을 때가 있지만 내 길의 빛인 영원하신 주님의 말씀은 내가 어디에 있는지, 내가 나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정확히 보여 주십니다.  주님은 부활이고 생명이시며 주님을 아는 것이 영생임을 고백합니다.  내가 주님을 주라고 부를 때 주는 나를 소유하신 법적 소유주이시며, 따라서 나는 주님을 섬기는 종임을 깨닫습니다. ( 27:1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