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7:12) 일의 아들은 숩빔과 훕빔이요 아헬의 아들은 후심이더라 , 아헬은 누구인가?

(대상 7:13) 납달리의 아들들은 야시엘과 구니와 예셀과 살룸이니 이는 빌하의 손자더라 납달리는 단지 한 줄로만 기록된다.   ( 30:8에는 라헬이 이르되 내가 언니와 크게 경쟁하여 이겼다 하고 그의 이름을 납달리라 하였더라고 하며 승리를 의미하고, 49:21에서 이삭은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도다라고 예언하지만, 여기는 초라하기 그지 없다

(대상 7:14) 므낫세의 아들들은 그의 아내가 낳아 준 아스리엘과 그의 소실 아람 여인이 낳아 준 길르앗의 아버지 마길이니 아스리엘은 더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어릴 때 죽었을까?  대신 마길의 자손으로 이어진다. 

(대상 7:15) 마길은 훕빔과 숩빔의 누이 마아가라 하는 이에게 장가 들었더라 므낫세의 둘째 아들의 이름은 슬로브핫이니 슬로브핫은 딸들만 낳았으며 – 12절 숩빔과 훕빔이 다시 나오는데 순서가 바뀌었고, 마길은 그래서 의 사위가 된다.  슬로브핫은 전에 공부했던 딸만 있는 사람이다.  그 딸들의 아버지에 대한 송사를 바탕으로 모세가 상속에 대한 판례로 삼고, 이는 보아스와 룻을 연결해 주며, 결국 그리스도의 계보를 잇는다.

(대상 7:23) 그리고 에브라임이 그의 아내와 동침하매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 집이 재앙을 받았으므로 그의 이름을 브리아라 하였더라 아들을 낳았는데 재앙을 받고,

(대상 7:24) 에브라임의 딸은 세에라이니 그가 아래 윗 성 벧호론과 우센세에라를 건설하였더라 딸은 오히려 여걸이다.

(대상 7:27) 그의 아들은 눈이요 그의 아들은 여호수아더라 그런데 이런 재앙과 관련된 이름을 가진 브리아를 통해 여호수아가 나온다.

므낫세와 에브라임은 요셉의 두 아들이었기 때문에 장자의 명분이 요셉에게 있다.  흥미로운 것은 므낫세가 반으로 나뉘어서 둘이 됐기 때문에 사실상 장자의 두 몫을 받은 것이 아니라 세 배를 받았다.

납달리는 단 한줄만 기록되는 반면 베냐민은 8장에 다시 기록되고 스불론 지파와 단 지파는 아예 빠져버렸다.  계시록에도 다시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가 나오는데, 여기에는 스불론 지파는 부활되지만 단지파는 다시 빠졌고, 특히 에브라임 지파 역시 나오지 않는대신 요셉과 그 두 아들이 기록되어 사실상 요셉이 세 지파를 대표하게 된다. 

원래 민 1:47-49에는 "오직 레위인은 그 조상의 지파대로 그 계수에 들지 아니하였으니 레위 지파만은 너는 계수치 말며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 계수 중에 넣지 말고" 라고 기록하며 레위 지파는 지파를 열거할 때 넣지 않지만 역대상 족보에는레위 지파에 대한 기록이 꽤 길게 포함되고, 단지파와 스불론 지파는 제외된다.  단지파와 계시록에서 빠진 에브라임 지파는 우상숭배때문에 빠진 것이 거의 확실하다.  하나님께서 제일 싫어하시는 우상숭배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의 이미지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결국 하나님을 믿는가 아닌가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막내 베냐민에 대해 이렇게도 많이 기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베냐민 자손 중에는 사로잡혀 간 이들도 있고 (8:6), 본토를 떠난 이들도 기록되지만 (8:8),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매우 번성했다.  역대상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에 기록된 것으로, 과거를 기억함으로 현재의 상황은 매우 어려워 보여도 자신들의 과오를 돌아보며 회개함으로 과거의 영광을 회복하고, 원래 하나님의 뜻하신 것을 향해 재도약할 수 있도록 고취한다.

9 1-2절은 바벨론 포로 후에 이스라엘로 돌아온 이들이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느디님 사람들이라고 하고, 끌려 가지 않고 남아 있던 이들 중에도 유다 베냐민 에브라임 므낫세 자손들 중에 몇이 있었음을 말한다.  여러 직무를 맡은 자들은 물론 문지기들 이름까지도 기록한다.  그들은 자신이 맡은 일들을 충성히 행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흥미로운 것은 바벨론에게 져서 끌려 갔던 치욕스러운 과거가 있었음에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바벨론 신에게 지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죄악이 보응받은 것임을 알았고, 이에 대해 포기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기 보다는 제사장들을 중심으로 다시 하나님께 돌아와서 전에 하던 사역들을 재개했다는 것이다.

현재 많은 상황들과 모습들이 마치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것 같다.  대형 교회들도 많고 기독교 문화는 매우 발전했지만 현실에서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줄어들고, 하나님을 떠나서 자본주의는 물론 사회주의라는 우상숭배로 치닫고 있는 대세에 제동을 걸지 못한다.  내실을 다지는 것은 물론, 문을 열고 닫음으로 세상에 영향을 주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주신 그 원래의 뜻으로 돌아가야 한다.  역대상은 이를 말씀하고 있다.

 

주님, 주님의 뜻과 계획을 떠나 죄의 노예와 포로가 되었었지만, 주님께서 값을 지불하심으로 우리를 구속하셨음을 감사합니다.  과거의 치욕에서 해방받을 뿐만 아니라, 현실은 녹록해 보이지 않아도 주님의 언약을 기억하며 주의 충성된 종들을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 자신의 직무를 다할 수 있는 주의 백성들 되게 하소서.  사라진 지파들도 있지만 막내 베냐민은 크게 부흥했고, 요셉은 세 지파의 몫을 받았음을 봅니다.  주님의 계획은 좌절되지 않습니다.  주께 붙어있기 원합니다.

페북 나눔:

므낫세와 에브라임은 요셉의 두 아들이었기 때문에 장자의 명분이 요셉에게 갔습니다.  또 므낫세가 반으로 나뉘어서 둘이 됐기 때문에 사실상 장자의 두 몫을 받은 것이 아니라 세 배를 받은 것이 되네요.  납달리는 단 한줄만 기록되는 반면 막내 베냐민 지파는 8장에 다시 추가로 기록되고 스불론 지파와 단 지파는 아예 빠져버렸습니다.  계시록에는 스불론 지파가 부활하지만 단 지파는 다시 빠졌고,  에브라임 지파도 나오지 않는 대신 요셉과 그 두 아들이 기록되어 사실상 요셉이 세 지파를 대표하게 됩니다.  단지파와 계시록에서 빠진 에브라임 지파는 ‘우상숭배’ 때문에 빠진 것이 거의 확실합니다.  하나님께서 제일 싫어하시는 우상숭배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의 이미지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결국 하나님을 믿는가 아닌가 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막내 베냐민에 대해 많은 기록을 하는 이유는, 역대상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에 기록된 것으로, 과거를 기억함으로 현재의 상황이 매우 어려워 보여도 자신들의 과오를 돌아보며 회개함으로 과거의 영광을 회복하고, 원래 하나님의 뜻하신 것을 향해 재도약할 수 있도록 고취하는 것입니다.  9장은 여러 직무를 맡은 자들은 물론 문지기들 이름까지도 기록합니다.  그들은 자신이 맡은 일들을 충성히 행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바벨론에게 끌려 갔던 치욕스러운 과거가 있었음에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바벨론 신에게 지신 것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죄악에 보응받은 것임을 알았고, 이에 대해 포기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기 보다는 제사장들을 중심으로 다시 하나님께 돌아와서 전에 하던 사역들을 재개했다는 것입니다.  현재 대형 교회들도 많고 기독교 문화는 매우 발전했지만 현실에서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줄어들고, 하나님을 떠나 사회주의라는 우상숭배로 치닫고 있는 대세에 제동을 걸지 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럴 때 내실을 다지는 것은 물론, 문을 열고 닫음으로 세상에 영향을 주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주신 그 ‘원래’의 뜻으로 돌아감으로만 가능합니다.  역대상은 이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대상 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