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하반절에 사울의 계보가 기록되는데, 희한하게도 8장 하반절의 기록이 거의 그대로 나온다. 10장 초반에는 사울의 죽음에 대해 밝히는데, 그는 자살했고 그와 ‘그의 세 아들과 그 온 집안이 함께 죽’었다고 (10:6) 역대상은 기록하는데, 결국 그 핵심적인 이유는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라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 주셨더라(10:13-14)’고 밝히다. 사울은 왕으로서 참된 왕이신 여호와의 말씀을 지켜야 했지만 여호와를 떠나 여호와께 묻지 않고 신접한 자에게 길을 물었다.
그래서 사울의 계보에는 무언가 석연치 않은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전통적으로 장자권은 장자를 통해 계승되지만, 9:41 요나단 아들인 므립바알 (므비보셋의 다른 이름) 때 부터 아들이 하나만 있거나 아니면 막내 아들로 계보가 이어진다. 기록된 순서로 보아 아하스는 미가의 막내이고, 아하스의 손자 중 막내 시므리로 이어지다가 계속 5대손까지 독자만 있다가 아셀 때가 되어야 비로소 여섯 아들을 배출한다. 이 ‘여섯 아들’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없지만, 이미 8장 38절에 이들에 대해 기록했는데 다시 44절에 거듭 기록되면서 사울의 집이 회복됐음을 말해주는 것 같다.
주님께서는 출 34:7에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고 하셨는데, 아버지의 악행에 대해 자손 삼사 대까지만 보응하시는 것도 은혜다. 이러한 보응은 아버지의 죄를 그 자손들이 뒤집어 쓴다는 것이 아니라 (겔 18:20), 아버지의 악행은 안타깝게도 그 자손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사랑이신 주님께서 뭐가 부족해서 인간을 골탕먹이려고 하시겠는가.. 인간은 그 죄인됨 자체로 인해 고생한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말씀대로 그 아버지와는 다르게 착했던 요나단이 죽임을 당하게 하시고 그에게 므비보셋이라는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독자만 있게 하셨지만, 그 작은 씨를 통해서 삼사대 후에는 회복되며 아셀 때에는 다시 왕성하게 일어나게 하셨음을 볼 수 있다. 더우기 지난 8장에는 아셀 뿐만 아니라 ‘그의 아우 에섹의 아들은 이러하니 그의 맏아들은 울람이요 둘째는 여우스요 셋째는 엘리벨렛이며 울람의 아들은 다 용감한 장사요 활을 잘 쏘는 자라 아들과 손자가 많아 모두 백오십 명이었더라 베냐민의 자손들은 이러하였더라 (8장 39-40절)’고 기록하며 사울의 집이 다시 은총을 회복했음을 볼 수 있다.
하나님 아버지, 육신의 아버지를 주심을 감사합니다. 좋은 영향도 많이 받았지만 그렇지 않은 점도 적지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저 역시 주님께서 주신 저의 자녀들에 대해 그렇습니다. 이제 그리스도를 통해 참 아버지께로 오고, 그분으로 부터 영향을 받기 원합니다. 오늘 성령을 한량없이 주시옵소서.
페북 나눔:
사울은 왕으로서 참된 왕이신 여호와의 말씀을 지켜야 했지만 여호와를 떠나 여호와께 묻지 않고 신접한 자에게 길을 물었기에 참혹한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은혜로우신 주님께서는 출 34:7에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고 하셨는데, 아버지의 악행에 대해 자손 삼사 대까지만 보응하시는 것도 은혜입니다. 이러한 보응은 아버지의 죄를 그 자손들이 뒤집어 쓴다는 것이 아니라 (겔 18:20), 아버지의 악행은 안타깝게도 그 자손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말씀대로 그 아버지와는 다르게 착했던 요나단이 죽임을 당하게 하시고 그에게 므비보셋이라는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독자만 있게 하셨지만, 그 작은 씨를 통해서 삼사대 후에는 회복되며 아셀 때에는 다시 왕성하게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우리 육신의 아버지는 나 자신을 포함하여 자녀들에게 좋은 영향도 주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참 아버지께로 올 수 있습니다. 그분으로부터 영향을 받기 원합니다. (대상 9:35-10:14)
King Saul had to keep the word of God who is forever the true King. However, he had left God and did not ask of him but consulted dirty spirits instead, and eventually was put to death. However, as the gracious God had declared ‘Keeping mercy for thousands, forgiving iniquity and transgression and sin, and that will by no means clear the guilty; visiting the iniquity of the fathers upon the children, and upon the children's children, unto the third and to the fourth generation’ in Exodus 34:7, it is very encouraging to know that the iniquity of the fathers upon the children reaches only up to the third and the fourth generation. This does not mean the children will be responsible for what their father did as it is written in Ezekiel 18:20 saying, ‘The soul who sins shall die. The son shall not bear the guilt of the father, nor the father bear the guilt of the son. The righteousness of the righteous shall be upon himself, and the wickedness of the wicked shall be upon himself.’ It rather means there is inevitable influence of the father’s deeds upon his children. Although Jonathan also had been put to death, and he only ended up having a disabled son Mephibosheth, according to the promise in the book of Exodus, through this small seed, Saul’s family had recovered after 3-4th generation, and being wholly reinstated in Azel’s time. Our physical fathers, including myself, sometimes influence positively to our children, but much more do we influence negatively. Now, however, we can come to our true Father through Christ. May we all be influenced and soaked by H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