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을 따르는 이들을 열거한 내용이다. 모든 이스라엘 지파에서 다윗을 따르지만 지파 모든 사람들이 따르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역대상 앞 부분에 열거했던 각 지파 수 보다는 그 수가 적다. 유다가 다윗 출신 지파이고 앞으로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이기 때문에 먼저 기록되지만 사울의 동족인 베냐민 지파 출신 삼천을 제외하면 가장 적은 수다. 흥미로운 것은 레위 지파를 포함, 아론의 집은 물론 사독과 그의 가문 또한 모두 용사들이 열거되는데, 이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들과 성전 관리인들이지만, 필요에 따라 용사들로서 일어난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가 큰데, 물론 당시는 제정이 일치가 된 사회로 여겨졌지만, 그래도 사울부터 제사장 외에 왕이 따로 세워진 ‘왕국’이 된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왕들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따라야 하는 하나님의 왕국이다.
중세를 거치면서 로만카톨릭이 사리사욕을 위해 정치력을 휘두르자 그 결과로 근대에는 소위 ‘정교분리’라는 말이 생겼지만, 참된 하나님의 백성들은 정치와 종교를 분리할 수 없다. 크리스천들은 하나님 그리고 그리스도를 참된 왕으로 섬기는 하나님의 왕국 백성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 있고 또한 그 왕국으로 들어가 살아가는 이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원론적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가이사가 아닌 하나님만을 섬긴다.
그 외에도 각 지파에서 매우 많은 수가 다윗에게 연합하는데, 특히 32절은 ‘잇사갈 자손 중에서 시세를 알고 이스라엘이 마땅히 행할 것을 아는 우두머리가 이백 명이니 그들은 그 모든 형제를 통솔하는 자이며’ 라고 기록한다. 단지 우두머리 이백 명을 기록했지만, 지난 7장 5절은 ‘그의 형제 잇사갈의 모든 종족은 다 용감한 장사라 그 전체를 계수하면 팔만 칠천 명이었더라’고 했기 때문에 그 수가 가장 많다. 또 33절은 ‘스불론 중에서 모든 무기를 가지고 전열을 갖추고 두 마음을 품지 아니하고 능히 진영에 나아가서 싸움을 잘하는 자가 오만 명이요’ 라고 기록하는데, ‘무기’와 ‘전열’과 ‘두 마음을 품지 아니함’으로 무장되고 ‘싸움을 잘하는’ 이들이 오만이나 된다.
이렇게 자세한 언급은 소위 ‘대세’를 설명하는데, 이러한 참된 대세를 아는 이들이 특히 ‘잇사갈 우두머리 이백’이라는 것이다. 리더십들은 대세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 단지 세상의 대세를 따라 거기에 붙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대세이신 하나님께서 어디에 계시는지 깨달아야 한다. 영어 킹제임스에서는 이 부분을 ‘men that had understanding of the times, to know what Israel ought to do’라고 되어 있는데, ‘시대에 대해 이해하고 이스라엘이 해야 할 것을 아는 이들’이라고 번역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시대 혹은 세대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마 16:3, 롬 12:2). 깨어있어야 한다 (마 24:42). 이러한 이들은 단지 이백명만 있어도 그 435배인 팔만 칠천을 움직일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시세를 아는’ 이들이 레위 지파나 아론 족속 즉 종교를 담당한 이들이 아니라 잇사갈 지파라는 것이다. 요즘으로 말하면 목회자들이 아니라 성경에도 없는 그 출처가 불분명한 소위 ‘평신도’들이라는 것인데, 목회자들이 시대를 읽을 줄 알면 제일 좋겠지만, 요즘 시대는 너무 복잡해져서 예전처럼 목회자들이 특별히 많은 교육을 받거나 전문인이 되기 쉽지 않다. 각 분야에 전문인들은 이 시대를 하나님의 왕국의 관점으로 볼 수 있어야 하고, 그러한 것을 팔만 칠천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 전체에 알릴 수 있어야 한다.
각 시대는 항상 우리로 양자택일하게 한다. 세상이냐 주님이냐, 돈이냐 하나님이냐, 사망이냐 생명이냐, 종교냐 그리스도냐.. 그 사이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명철 즉 understanding을 얻음으로 온전히 분별하며, 분별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행할 것을’ 행해야 한다.
주님, 잠에서 깨지 못하고 이 시대를 분별하지 못하며 세상이 가는대로 끌려가는 주의 백성들이 있음을 압니다. 주의 말씀으로 분별하게 하소서. 분별만이 아니라 주님의 성령의 충만하심으로 마땅히 해야할 것을 하는 우리들 되게 하소서.
페북 나눔: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들과 성전 관리인들도 필요에 따라 용사들로서 일어납니다. 참된 하나님의 백성들은 정치와 종교를 분리할 수 없습니다. 크리스천들은 하나님 그리고 그리스도를 참된 왕으로 섬기는 하나님의 왕국 백성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 있고 또한 그 왕국을 살아갑니다. 잇사갈 자손은 단지 우두머리가 이백 명이라고 기록했지만, 지난 7장 5절은 ‘그의 형제 잇사갈의 모든 종족은 다 용감한 장사라 그 전체를 계수하면 팔만 칠천 명이었더라’고 했기 때문에 그 수가 가장 많습니다. 리더십들은 대세를 읽을 줄 알아야 하는데, 단지 ‘세상’ 대세를 따라 거기에 붙으라는 말이 아니라, 참된 대세이신 하나님께서 어디에 계시는지 깨달아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 그 435배인 팔만 칠천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시세를 아는’ 이들이 레위 지파나 아론 족속 즉 종교를 담당한 이들이 아니라 잇사갈 지파라는 것인데, 요즘으로 하면 성경에도 없는 그 출처가 불분명한 소위 ‘평신도’들이라는 것입니다. 목회자들이 시대를 읽을 줄 알면 제일 좋겠지만, 요즘 시대는 너무 복잡해져서 예전처럼 목회자들이 특별히 더 많은 교육을 받거나 전문인이 되기 쉽지 않습니다. 각 분야에 전문인들은 이 시대를 하나님의 왕국의 관점으로 볼 수 있어야 하고, 그러한 것을 팔만 칠천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 전체에 알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분별함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행할 것을’ 행해야 합니다. (대상 12:23-40)
Even the Levites and all the temple workers rise as soldiers as it came necessary. True people of God cannot separate between the State and the Religion. Since Christians are people serving God and Christ as the only King, we see the Kingdom of God on the earth and also live the Kingdom today. The Issachar tribe has only two hundred leaders came, but as the past chapter 7 verse 5 said ‘And their brethren among all the families of Issachar were valiant men of might, reckoned in all by their genealogies fourscore and seven thousand (87K),’ they had the most people. Leadership must have the understanding about signs of the times. They are not to be shifted by the ‘current flow’ but they must understand the true tides of God. By having the proper understanding, they can lead the 87,000 people, 435 folds of themselves. They were not ‘priests’, but just normal people. It would be the best if priests have the proper understanding, but the current world has become so much complicated and specialized. Therefore, many people in their specialized fields must be able to see the world in the perspective of the Kingdom and make it known to the extended ‘87K’ people of the Kingdom. Not just ending at ‘understanding’, but we must ‘do’ what we ought to do. (1 Chronicles 12:23-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