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은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궤를 가져오자고 제안한다. 갑자기 드는 생각은 ‘사울은 어떻게 하지?’ 였는데, 13절 ‘사울 때에는 우리가 궤 앞에서 묻지 아니하였느니라’는 구절을 읽으며 사울은 이미 10장에서 죽은 것이 기억났다. 나의 생각 속에는 그의 망령이 남아 있어서 아직도 그가 살아있을거라고 잠시 착각했던 것이다. 사울은 원래 겸손하고 착하게 보였던 인물이었지만, 왕좌에 앉자 그의 인품이 드러난다. 억지가 아닐지 모르지만 마치 율법의 어떠함을 보는 것 같다. 바울이 말한대로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다 (롬 7:12). 하지만 율법이 우리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죄를 깨닫게 하 (롬 3:20)’는 것 즉 우리가 소망없는 죄인임을 (혹 과거 죄인인었음을) 알려줄 뿐이다.
하지만 이제는 은혜의 다윗 시대다. 새로운 시대와 더불어 여태껏 ‘기럇여아림’에 처박혀 있던 여호와의 궤에 다시 관심이 돌아간다. 여호와의 궤가 20년 동안이나 기럇여아림에 있었는데 (삼상 7:2), 그곳은 조선시대로 말하자면 백정마을이다. 그래서 벧세메스 사람들은 법궤를 그 곳으로 떠넘겼다. 성막에 안치되어야 할 법궤는 그래서 20년 동안이나 아비나답의 개인집에 머무르게 된다. 다윗은 여호와의 궤의 비밀을 알았는데, 그것은 ‘여호와께서 두 그룹 사이에 계시’는 (6절), 즉 여호와의 임재를 의미한 것이다. 율법시대는 정죄함만 있었지만, 은혜시대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다. 성령이 오신다.
율법은 법이기에 일방적이다. 거기에는 소통이나 예외가 없다. 법을 범하면 범법자가 될 뿐이다. 하지만 여호와의 궤는 물을 수 있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이다. 우리가 이제는 ‘의문의 묵은 것 (롬 7:6 개역한글판)’이 아니라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긴다.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기 (고후 3:6) 때문이다. 이것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율법에서 해방받았다 (롬 7:6). 영은 쌍방적이다. 우리의 영 안에 (고전 6:20, 갈 6:18, 몬 1:25) 하나님의 그 영이 계신다. 우리가 알든 알지 못하든,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그의 임재하심이 우리 안에게 있다. 이것은 믿음의 문제이기 때문에, 핵심은 우리가 그에게 묻느냐에 있다. 참된 예배는 양방향이고 이는 영 안에서 하는 것이다 (요 4:23-24 * 정확히는 '제사'를 의미하는 ‘예배’의 개념이 아니라 ‘경배’ 즉 무릎꿇음의 의미다).
주님,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예배나 집회 혹은 그러한 모임에 임하는 저의 마음과 태도를 돌아 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제 그 어디나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을 저의 삶의 지경 속 중심에 항상 모시기 원합니다. 나의 지혜와 인도하심이 되소서.
페북 나눔:
사울은 이미 죽고 은혜의 다윗 시대가 열림으로 여호와의 임재인 궤가 들어옵니다. 아직도 사울이 살아있을거라고 잠시 착각했는데, 10장에 그는 이미 죽었습니다. 그에게서 율법의 어떠함이 보이는데,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지만 (롬 7:12), 우리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죄를 깨닫게 하 (롬 3:20)’는 것 즉 우리가 소망없는 죄인임을 (혹 과거 죄인인었음을) 알려줄 뿐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은혜의 다윗 시대입니다. 여호와의 궤의 비밀은 여호와의 임재하심 입니다. 율법시대는 정죄함만 있었지만, 은혜시대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습니다. 성령이 오십니다. 율법은 일방적이고 소통이나 예외가 없습니다. 법을 어기면 범법자가 될 뿐이지만, 여호와의 궤는 물을 수 있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입니다. 우리가 이제는 ‘의문의 묵은 것 (롬 7:6 개역한글판)’이 아니라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깁니다.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기 (고후 3:6) 때문이죠. 우리는 율법에서 해방받았습니다 (롬 7:6). 우리의 영 안에 (고전 6:20, 갈 6:18, 몬 1:25) 하나님의 그 영이 계십니다. 우리가 알든 알지 못하든,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그의 임재하심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이것은 믿음의 문제로, 참된 예배는 양방향이고 영 안에서 하는 것입니다. (대상 13:1-8)
Saul had already died and King David’s age of grace has dawned by having the Ark of the Covenant returned. For a very brief moment, I thought Saul was still alive, but he already killed himself in chapter 10. Saul resembles the law that ‘the law is holy, and the commandment holy, and just, and good (Rom 7:12), yet the only thing the law can offer us is ‘the knowledge of sin (Rom 3:20). We only find ourselves being a hopeless sinner through the law. But it is now the age of grace through David the King. The Ark represents the presence of Jehovah. There was only condemnation in the age of the law, but there is the presence of God in the age of grace. The Holy Spirit has come. The law is unilateral and there is no room for communication or exceptions. We just become criminals when we violate the law, but the Ark of the Covenant is something we can ask to - again the presence of God. We no longer serve in the oldness of the letter, but in newness of spirit (Rom 7:6) ‘for the letter killeth, but the spirit giveth life’ (1 Cor 3:6). We have been delivered from the law (Rom 7:6). Spirit of God is now in our spirit (1 Cor 6:20, Gal 6:18, Philemon 1:25). Whether we know it or now, whether we feel it or not, the presence of God is in us. This is a matter of faith, and the true worship happens in our spirit and is bilateral (John 4:23-24). Qt from 1 Chronicles 1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