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막에 언약궤가 안치되자 예배가 회복된다.  사실 '예배'가 아니라 '제사'.  우리 말 '예배' '제사'의 의미로 이해하지만, 원래 '예배' '경배' '절하다'의 의미다.  하지만 제사는 정해직 의식과 규칙이 있는, 보다 좀 더 많은 것들이 요구된다.  다윗이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까지 제사를 드리고 싶었겠지만 여호와의 궤가 없었기 때문에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여호와의 궤가 다윗 성에 안치되고 제사가 회복되는데, 이는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됨을 의미한다.

그래서 다윗이 처음에 한 것은 '번제와 화목제'를 하나님께 드렸는데, 1절 원어에는 '그들이 드렸다'로 되어 있고, 2절에는 다윗 역시 드렸음을 기록한다.  번제나 화목제나 모두 먼저 피를 뿌리는데, '번제' '제물을 불로 태우는' 제사는 가죽을 제외하고 전체를 다 불사르는 것이다 ( 12:27에는 '네가 번제를 드릴 때에는 그 고기와 피를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에 드릴 것이요 네 제물의 피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 위에 붓고 그 고기는 먹을지니라'고 되어 있어서 마치 번제도 '그 고기는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 구절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어서 번제는 역시 모든 것을 태우는 제사다)  그래서 남는 것이 없다.  반면에 화목제는 기름과 내장 등만 불사르고 '화목제물 중에서 그 흔든 가슴과 든 뒷다리를 가져다가 제사장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주었나니 ( 7:34)'는 말씀처럼 그 일부가 제사장들에게 돌아간다.

구약에는 여러 제사가 있지만 유독 번제와 화목제는 함께 갈 때가 많은데, 오늘 말씀 역시 마찬가지이다.  번제는 완전히 자신을 불에 태우듯 헌신하는 의미로, 이러한 온전한 헌신은 ( 13:44) 그리스도의 어떠하심을 보여준다.  번제 후에는 화목제가 있는데, 이러한 완전한 헌신은 매우 중요하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가끔 구원을 '죄사함'이라고 이해하지만, 엄밀히 죄사함 자체는 구원의 시작일 뿐이다.  온전한 구원은 단지 죄들 사해진 것만을 경험한 것이 아닌 (물론 그 자체도 놀라운 은혜지만), 주님과의 완전한 관계 회복이다.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 ( 15:5)',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 ( 3:20)'는 것이다.

이러한 번제와 화목제가 오늘 우리에게 있다.  바로 그리스도시다.  우리의 '예배' '집회'에는 눈에 보이는 제물이나 제사가 없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음으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참된 경배가 가능하다.  매일 동물을 죽여서 드리는 제사가 필요없이, 단번에 드려진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참된 제물로서 우리를 온전히 하나님 앞에 서게 한다.  죄사함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하신 생명과 모든 부요하심을 매일 누릴 수 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단지 우리는 '영 안에서' 그리고 ' (알레떼이아, 진리, 현실)' 안에서 아버지를 예배하며 그 분과 하나되고 또한 그 분의 자녀들과 하나된다.

주님, 우리의 참된 번제와 화목제 되심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그 때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렸던 그 기쁨을 우리는 영이신 하나님께로만 돌이키면 언제라도 누릴 수 있음을 봅니다.  우리에게 단번에 드려진 참 제물이신 그리스도가 계시고, 그 뿌려진 영원한 효력 있는 피가 있음을 봅니다.  오늘도 주님을 의지합니다.  주님을 통해 아버지께로 옵니다.

페북 나눔:

예배 혹은 제사의 목적은 관계 회복입니다. 장막에 언약궤가 안치되자 예배가 회복됩니다. 다윗이 처음에 한 것은 '번제와 화목제'를 하나님께 드렸는데, '번제' '제물을 불로 태우는' 제사는 가죽을 제외하고 전체를 다 불사르는 것입니다. 반면에 화목제는 기름과 내장 등만 불사르고 '화목제물 중에서 그 흔든 가슴과 든 뒷다리를 가져다가 제사장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주었나니 ( 7:34)'는 말씀처럼 그 일부가 제사장들에게 돌아갑니다. 번제는 완전히 자신을 불에 태우듯 헌신하는 의미로, 이러한 온전한 헌신은 ( 13:44) 그리스도의 어떠하심을 보여줍니다. 번제 후에는 화목제가 있는데, 이러한 완전한 헌신은 매우 중요하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가끔 구원을 '죄사함'이라고 이해하지만, 엄밀히 말해 죄사함 자체는 구원의 시작일 뿐이고, 온전한 구원은 주님과의 완전한 관계 회복 즉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 ( 15:5)',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 ( 3:20)'는 것입니다. 이러한 번제물와 화목제물이 오늘 우리에게 있는데, 바로 그리스도십니다.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음으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참된 경배가 가능합니다. 주님을 통해, 단지 죄사함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하신 생명과 모든 부요하심을 매일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단지 우리는 '영 안에서' 그리고 ' (알레떼이아, 진리, 현실)' 안에서 아버지를 예배하며 그 분과 하나되고 또한 그 분의 자녀들과 하나됩니다. 오늘도 주님을 의지합니다. 주님을 통해 아버지께로 옵니다. (대상 1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