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워서 승리할 대상이 있는가 하면 아예 싸우기도 전에 우리 쪽으로 투항하거나 종속하는 이들도 있다.  하맛은 지난 3절을 포함 여러 구약의 내용을 보면 이스라엘과 접경한 곳으로 보이는데, 이스라엘과 가까워도 충돌은 없고 오히려 그 건너편 소바에게 매번 당했던 것 같다.  이러한 국제관계 속에서 그들이 다윗에게 도움을 받자 그의 아들 하도람을 보내서 다윗 왕에게 문안하고 축복하게 (원어로는 축하하게) 고 그 왕 하도람이 금과 은과 놋의 여러 가지 그릇을 가져왔다 (10).  다윗은 하도람에게 너도 기다려라 내가 곧 정복하겠다라고 하지 않고 그를 우대했는데, 이렇게 미리 투항하는 이들은 정복해야 할 적이 아니라 사실 우리 편이기 때문이다.

다윗은 자신이 성전을 지을 수는 없지만 성전 재료를 차곡차곡 준비해 가는데, 이러한 여러 전쟁의 전리품과 조공품들을 모아 여호와께 드려서 솔로몬으로 성전을 지을 수 있게 한다.  자신이 직접하지 못한다고 해서 손을 놓는 것이 아니라 차세대를 위해 정성껏 준비하는 것이 하나님의 종의 모습이다.  (그러고 보니 전에는 차세대였던 내가 벌써 현세대가 되었다)

12절은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나오는데, 생명의 삶 해설은 이 스루야가 다윗의 여자 형제라고 설명한다.  지난 2:16그들의 자매는 스루야와 아비가일이라 스루야의 아들은 아비새와 요압과 아사헬 삼형제요라고 했는데, 흥미로운 것은 생명의 삶 해설에는 다윗의 여자 형제라고 했다는 점이다.  원래 형제는 남자를 칭하는 말이지만 이 스루야는 아비가일과 더불어 다윗의 자매인데 여자 형제라고 했다.  생명의 삶 해설의 실수일까?  실수일 수 있지만 흥미롭게 여겨지는 것은 보통 아버지의 이름으로 아들의 이름들이 열거되지만, 스루야는 여자로서 그 아들 셋이 열거되고 그 모두가 용사다.  스루야의 어떠함을 볼 수 있는 점이며 아마도 그래서 여자 형제라고 설명한 듯 하다.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와 자매가 있지만, 영적으로는 모두 신부이며 또한 형제다.

 

13절은 에돔까지 복속시키는데, 6절 아람과 비슷하게 수비대를 두어 복속시키고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고 동일하게 기록한다.  그런데 사실 이기게 하셨다라는 부분은 원어로 야샤이며 구원하다, 구속하다, 보전하다등의 의미이다.  이 단어는 여호수아여호와는 구원이시다에서도 볼 수 있으며, 여호수아는 헬라어로 예수()’가 된다.  승리는 분명 싸워서 이기는 것이지만, 전쟁이나 승리는 근본적으로 하나님께 속했다.  우리를 이기게 하시는 분은 예수시고, 구원하시는 이 역시 예수시다.  예수는 우리를 보전하시고 ( 11:11, 12, 15 살전 5:23) 승리하게 하신다 ( 8:37, 고후 2:14, 요일 5:4).   소극적인 면으로는 악한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며 견디어 내는 것 역시 승리하는 것이다 ( 1:27).

 

14절은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할새라고 하는데, 15-17절에 그가 임명한 사람들을 보면 요즘 기준으로는 세습내지는 자기 사람들 위주로만 등용한 것 처럼 보인다 (물론 다윗은 왕이기에 당연하다).  특히 그의 여자 형제스루야가 처음으로 기록되고 한 두 명을 제외한 다른 모든 이들은 다윗의 측근이나 그의 아들들이다.  공평하게 보이지 않는데,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따른 다윗의 다스림은 공평이 기준이 아니라 정의와 공의가 기준이기 때문이다.  1:8은 시 45:6을 인용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라고 하는데, 여기의 이 공평평평하다의 의미도 있지만 공의의 의미도 있다.  주님의 공평은 인간이 생각하는 평등이 아니다.  물론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 되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소유하지만, 모두가 다 동일한 자리나 모습으로 획일적인 삶을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윗이 그의 측근을 등용한 것은 그것이 정의와 공의를 행하기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주님, 정말 주님은 진리이십니다.  인간은 싸워 이김으로 승리를 쟁취하려 하지만,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승리하셨고 ( 2:15) 고난 받으시고 순종하심으로 온전하게 되셨음을 ( 5:8-9) 봅니다.  결국 하나님을 떠난 인본주의가 근간인 사회주의는 공평을 외치지만 양극화는 더욱 심각해짐을 봅니다.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나 민주주의나 사회주의 모두는 인간의 산물임을 고백합니다.  어디에 있든지 오직 주의 다스리심 아래서 주의 정의와 공의를 누리기 원합니다.

페북 나눔:

보전과 인내함은 승리의 또 다른 모습 입니다.  주님께서는 공평이 아닌 공의로 다스리십니다.  13절은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고 기록하는데 ‘이기게 하셨다’라는 부분은 원어로 ‘야샤’로서 ‘구원하다, 구속하다, 보전하다’ 등의 의미이며, 이 단어는 ‘여호수아’ 즉 ‘여호와는 구원이시다’ 에서도 볼 수 있는데, 이 ‘여호수아’는 헬라어로 ‘예수()’가 됩니다.  승리는 분명 싸워서 이기는 것이지만, 전쟁이나 승리는 근본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우리를 이기게 하시는 분은 예수시고, 구원하시는 이 역시 예수십니다.  예수는 우리를 보전하시고 ( 11:11, 12, 15 살전 5:23) 승리하게 하십니다 ( 8:37, 고후 2:14, 요일 5:4).  소극적인 면으로는 악한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며 견디어 내는 것 ( 1:27) 역시 승리하는 것입니다.  14절은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할새’라고 하지만 그 등용한 사람들은 한 두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그의 측근이나 그의 아들들입니다.  공평하게 보이지 않는데,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따른 다윗의 다스림은 ‘공평’이 기준이 아니라 ‘정의와 공의’가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1:8은 시 45:6을 인용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라고 하는데, 여기의 이 ‘공평’은 ‘평평하다’의 의미도 있지만 ‘공의’의 의미도 있습니다.  주님의 공평은 인간이 생각하는 평등이 결코 아닙니다.  각 사람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모두가 다 동일한 자리나 모습으로 획일적인 삶을 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그의 측근을 등용한 것은 그것이 ‘정의와 공의를 행’하기에 적합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디에 살든지 오직 주의 다스리심 아래서 주의 공의와 정의를 누릴 수 있습니다.  (대상 18:9-17)

Preservation and perseverance are other features of a victory.  The Lord reigns in righteousness and justice, not in equality.  Verse 13 says, ‘Thus the LORD preserved David whithersoever he went,’ and the word ‘preserved’ is ‘yasha’ meaning ‘to save, to deliver, or to preserve.’  This same word is a part of the name Joshua whichis combined word of ‘yasha’ and ‘Jehovah’ meaning ‘Jehovah saves’ and this same name is translated as ‘Iesus (Jesus)’ in Greek.  Victory is achieved through battles, but the battle and victory belong to the Lord.  One who causes us to overcome is the Lord Jesus, and He also saves.  Jesus preserves us (John 11:11, 12, 15 and 1Thes 5:23) and causes us to overcome (Rom 8:37, 2Cor 2:14, 1John 5:4).  Passive side of victory is to persevere this evil world and keep our faith (James 1:27). Verse 14 says, ‘So David reigned over all Israel, and executed judgment and justice among all his people,’ but those people he had assigned to important positions, except for one or two, are all from his acquaintances or family members.  It does not seem to be fair.  God’s reign, however, is not based upon ‘fairness’ but upon ‘justice and righteousness.’  Hebrew 1:8 says, ‘a sceptre of righteousness is the sceptre of thy kingdom.’  God’s righteousness never means ‘fairness’ that we think or expect.  We just cannot live the same or be in the same position when everyone is different.  David assigned those people because he considered them the best fit for the Kingdom.  We can enjoy God’s justice and righteousness under his reign no matter where we live.  (1 Chro 18: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