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에는 아무때나 전쟁을 했던 것이 아니라 농번기나 혹한기를 벗어난 전쟁에 적합한 계절에 싸웠다.  19장에 암몬을 끝장낼 수도 있었지만 시기 때문에 다음 해로 넘어오는데, 이 시기에 암몬은 화친을 칭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다시 요압이 나가서 암몬을 격파하고 완전히 함락시키는데, 암몬 하나 정도는 요압이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싸움은 요압이 마무리했지만, 그 영광은 다윗왕에게 돌아가는데, 2절에는 암몬 왕이 쓰던 보석 박힌 왕관을 다윗이 취했음을 기록한다.  우리가 전쟁에서 승리해도 면류관은 주님께로 돌린다 ( 4:10).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가시 면류관을 마다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면류관을 주님께 돌릴 때 주님께서는 다시 우리에게 여러가지 면류관으로 보답하신다 (딤후 4:8 ‘’, 1:12 ‘생명’, 벧전 5:4 ‘영광’, 고전 9:25 ‘썩지 않을’).

흥미로운 것은 이 왕관의 무게가 금 한 달란트나 되는 것인데, 시기나 장소에 따라 한 달란트의 무게는 변하지만 대략 20-40킬로그램 정도다.  암몬 왕은 이렇게 무거운 왕관을 쓰고 있었지만 그는 죽임을 당한다.  결국 그는 왕관을 쓸 자격이 없었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는 말이 있는데, 세익스피어가 헨리4세의 권력욕을 비판하며 했던 말이라고 한다.  왕의 권위와 권리만 누리려 하고 그 책임이나 의무는 회피하려는 이는 왕관을 쓸 자격이 없다.  왕이든 대통령이든 어느 기관의 대표든 아니면 가장이든 그 주어진 자리는 영광과 동시에 그 무게를 감내해야 하는 고통을 수반한다.  주님을 믿는 우리는 이 무게 역시 우리 힘으로만 견뎌내지 않는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영적인 것은 우리의 힘으로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래서 먼저 가시관을 쓰셨던 주님을 의지한다.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기 때문이다 ( 4:15).

주님께서 죽으실 때는 가시로 엮은 면류관을 쓰셨는데, 그 무게 자체는 얼마되지 않겠지만 인류의 모든 죄들의 고민거리와 부끄러움을 그 머리에 쓰셨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부활하시고 또 승천하신 후에는 주님의 모습이 전과는 완전히 다르시다.  그 가시 면류관은 이미 벗겨졌고,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셨다 ( 2:9).  다윗 왕이 썼던 그 왕관은 솔로몬으로 이어졌겠지만 그 후는 행방이 불분명하다.  이 세상의 영광이 그렇다.  하지만 주님께 충성함으로 양무리를 치고 본이 되는 장로들에게는 영원한 영광의 관이 주어질 것이다 (벧전 5:4).

4-8절은 블레셋에게 승리한 것을 기록하는데,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기기 전에는 거인이 앞에 서면 두려워 떨었지만 그 한번 승리의 경험은 거인이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님을 배우게 했다.  마치 라이트 플라이어 형제가 (기록상) 인류 최초로 비행을 성공하자 얼마되지 않아 세계 전역에서 비행기가 제작된 것, 그리고 전에는 인간의 힘으로는 100미터를 10초 미만으로 달리는 것이 불가능하게 여겨졌지만 1968년 멕시코올림픽에서 미국의 하인스 선수가 최초로 9 95를 기록한 후에는 9초대 기록이 쏟아져 나왔다.  영적 전쟁에서도 승리의 경험이 중요한데, 예전에 두려워 떨던 것을 이기는 경험을 하게 되면 그 비슷한 것들이 다시 와도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방심하면 안되지만 실패와 마찬가지로 승리 역시 습득되기 때문이다.

주님, 그 날 영광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 오늘 우리의 관의 무게와 아픔을 견뎌내기 원합니다.  주님의 그 가시 면류관을 묵상하며 그 부끄러움을 생각합니다.  주의 충성된 종들을 주께서 기뻐하시며 그들의 위로가 되심을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승리를 맛보기 원합니다.  일상으로 끝나지 않고 승리가 습득됨으로 참으로 승리자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하소서.  주님은 우리의 승리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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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은 요압이 마무리했지만, 그 영광은 암몬 왕이 쓰던 보석 박힌 왕관을 얻음으로 다윗왕이 취합니다.  그 무게가 금 한 달란트 즉 대략 20-40킬로그램 정도인데, 왕의 권위와 권리만 누리려 하고 그 책임이나 의무는 회피하려던 암몬 왕은 그 왕관을 쓸 자격이 없습니다.  주님을 믿는 우리가 인생 자체의 무게든 사역의 무게든 우리의 힘만으로 견뎌내는 것은 불가능합다.  먼저 가시관을 쓰셨던 주님을 의지해야 하는데, 주님께서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 4:15).  다윗 왕이 썼던 그 왕관은 솔로몬으로 이어졌겠지만 그 후는 행방이 묘연한데, 이 세상 영광의 허무함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주님께 충성함으로 양무리를 치고 본이 되는 장로들에게는 영원한 ‘영광의 관’이 주어질 것입니다 (벧전 5:4). 

4-8절은 블레셋에게 승리한 것을 기록하는데,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리기 전에는 거인이 앞에 서면 두려워 떨었지만 다윗의 승리는 거인들이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님을 배우게 했습니다.  라이트 플라이어 형제의 (기록상) 인류 최초로 비행 성공 후 쏟아지는 여러 비행 성공 사례, 그리고 하인스 선수가 100미터 달리기를 최초로 9 95를 돌파한 후에는 9초대 기록이 쏟아져 나왔던 것과 비슷합니다.  영적 전쟁에서도 승리의 경험이 중요한데, 예전에 두려워 떨던 것을 이기는 경험을 하게 되면 그 비슷한 것들이 다시 와도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됩니다.  그렇다고 방심하면 안되지만 실패와 마찬가지로 승리 역시 습득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승리이십니다.  (대상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