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되는 승리는 큰 패배를 야기할 수 있다.  진정한 승리는 세상적인 성공이 아니라 승리하신 주님께 붙어 있는 것이다.  달란트의 비유를 세상에서 열심히 일해서 성공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특히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근거로 삼는 경우가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공산주의는 말할 것 없지만 자본주의 역시 인간이 만든 불완전한 시스템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러고 보면 다니엘이 해석한 신상은 나라들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주의'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주님께서 그 예로 드신 것은 '' 즉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어떠하심에 대해 우리가 충성으로 전심을 다하여 '받은 만큼' 남기는 것이고, 오히려 세상을 의미하는 ''에 자신의 한 달란트를 경히 여겨서 묻은 종은 악하고 게으른 종으로 심판받았다.  주님께 붙어있는 것이 진정한 승리이기 때문에 세상에서 계속 승리하는 것 보다 오히려 실패를 맛보는 것이 더 유익할 수 있다.  자기 혼자서는 실패자일 수밖에 없음을 아는 이들에게 복음은 진정한 복음이 된다.

다윗은 주위 나라를 모두 평정했는데, 바로 그럴 때 보이지 않는 존재인 '사탄이 일어'난다 (1).  주위 나라는 평정했지만 멀리 이집트나 혹은 그 너머 땅에 대해서는 다윗이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다윗은 충동했는데, 그 이면에는 사탄이 있었다.  다윗은 '자신의 왕국'의 군사력이 어느정도인가 알기 원했는데, 그것은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땅 너머를 탐하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요압은 그 이유에 대해 간파하고 왕에게 조언하지만 이미 다윗의 마음은 충동질 당했다.

동시에 요압 역시 이번에는 왕의 명을 탐닥지 않게 여기는데, 물론 그의 조언은 좋은 것이었지만 6절은 '요압이 왕의 명령을 마땅치 않게 여겨 레위와 베냐민 사람은 계수하지 아니하였더라'고 기록하며 그가 왕의 명을 온전히 준행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5절에서 계수한 숫자와 같은 내용을 기록한 삼하 24:9와는 차이를 보인다.

승리가 습관화되면 좋기는 하지만 거기에도 위험은 있는데, 승리에 도취되어 마치 우리 힘으로 승리한 것이라고 착각하게 될 수 있다는 점이다. 7절은 '하나님이 이 일을 악하게 여기사 이스라엘을 치시매'라고 하는데, '이 일'은 다윗의 어리석은 명령은 물론이고, 요압의 태도 역시 가리키는 것이라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백성들 역시 문제가 있었음을 암시하는 말씀을 찾을 수 있는데, 같은 내용을 삼하 24:1는 조금 다르게 기록한다.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격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고 되어 있는데, 즉 여기에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먼저 진노하셨음을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은 이제까지 승리가 거듭됨에 취했고, 자신들의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라는 교만이 싹트며 여호와를 등지기 시작했음을 눈치챌 수 있다.  결국 큰 심판으로 이어진다.

주님,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단 한가지 이유는 주님께서 승리하셨기 때문임을 잊지 않기 원합니다.  소망없는 패배자가 승리자로 설 수 있음은 오직 주님 때문입니다.  우리를 분명 더이상 죄인 아닌 의인이요 또한 성도들로 주님께서는 바꾸셨지만, 그렇기 때문에 주님을 떠나서는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주님을 떠나면 왕과 신하 사이에 분열이 생기고, 백성들이 방자히 행하게 됨을 봅니다.  주께서 이 아침에 주시는 교훈과 책망하심을 감사함으로 받고 마음 속에 간직하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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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되는 승리는 큰 패배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승리는 세상적인 성공이 아니라 승리하신 주님께 붙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속 승리하는 것 보다 오히려 실패를 맛보는 것이 더 유익할 수 있습니다. 자기 혼자서는 실패자일 수밖에 없음을 아는 이들에게 복음은 진정한 복음이 됩니다. 다윗은 주위 나라를 모두 평정했는데, 바로 그럴 때 보이지 않는 존재인 '사탄이 일어'납니다 (1). 아마도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땅 너머 멀리를 탐하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요압은 그 이유에 대해 간파하고 왕에게 조언하지만 이미 다윗의 마음은 충동질 당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요압 역시 이번에는 '왕의 명령을 마땅치 않게 여겨 레위와 베냐민 사람은 계수하지 아니하였 (6)'습니다. 그래서 5절에서 계수한 숫자와 같은 내용을 기록한 삼하 24:9와는 차이를 보입니다. 그와 더불어 백성들 역시 문제가 심각했음을 암시하는 말씀을 찾을 수 있는데, 같은 내용을 삼하 24:1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격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고 말하게) 하신지라'고 기록합니다. 이스라엘은 이제까지 승리가 거듭됨에 취했고, 자신들의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라는 교만이 싹트며 여호와를 등지기 시작했음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결국은 큰 심판으로 이어집니다. 소망없는 패배자가 승리자로 설 수 있음은 오직 주님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분명 더이상 죄인 아닌 의인이요 또한 성도들로 바꾸셨지만, 그렇기 때문에 주님을 떠나서는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깊이 인지해야 합니다. 주님을 떠나면 왕과 신하 사이에 분열이 생기고, 백성들이 방자히 행하게 됩니다. (대상 2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