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에서 눈에 띠는 동사는 준비했다 (2절) 드렸다 (3절) 그리고 손에 채우다 (5절)이다. 그리고 중요한 형용사는 ‘기쁨으로’와 ‘즐겁게’이다. 여호와께 드리는 것은 기쁨으로 즐겁게 드려야 한다. 다윗 왕은 이에 대해 본을 보였는데, 지난 22:14의 금 십만 달란트는 물론이고 오늘은 추가로 ‘사유한 금, 은으로 (3절)’ ‘곧 오빌의 금 삼천 달란트와 순은 칠천 달란트 (4절)’를 바친다.
그러면서 백성들도 헌납에 참여하게 하는데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드림의 기쁨을 맛보게 하기 위함으로, ‘누가 즐거이 손에 채워 여호와께 드리겠느냐 (5절)’고 묻자 ‘모든 가문의 지도자들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지도자들과 천부장과 백부장과 왕의 사무관이 다 즐거이 드’렸다 (6절). 백성들 역시 ‘자원하여 드렸으므로 기뻐하였’고 이에 따라 다윗도 ‘심히 기뻐’했다 (9절).
주님께 드리는 것이 힘들고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면 드리지 않는 것이 낫다. 혹은 사탕발림으로 드리면 더 주신다는 ‘믿음?’으로 드리는 것 역시 옳지 않다. 우리는 돈을 쓸 때 소위 ‘효용성’을 따지는데, 효용성은 액수에 따르지 않고 그 가치에 따른다. 예를 들어 개스 값은 1센트라도 아까워서 더 싼데를 찾으려 돌아다닐 때가 종종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위해서라면 돈을 아끼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께 기꺼이 드릴 수 있는 것은 그 드리는 물질이나 액수보다 그 드림으로 인해 얻는 기쁨이 더 크기 때문이다.
5절은 ‘누가 즐거이 손에 채워 여호와께 드리겠느냐’고 하는데, 전에 ‘헌신’이라는 히브리어가 ‘손을 가득 채우다’라는 뜻임을 읽은 적이 있다. 즉 내가 손에 쥔 모든 것이 나의 기쁨이나 세상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 앞에’ 또 ‘여호와를 위해’ 손에 채우는 것인데, 주님 앞에 내 모습 그대로 드릴 때도 있지만, 주 앞에 나아가려면 사실은 무언가 가치있는 것을 손에 채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쥐고 있는 것들을 내려 놓고 그보다 더 가치 있는 것으로 내 손을 채워야 하는데,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가치있는 것은 온 우주에 하나 밖에 없다. 바로 그리스도시다. 내가 주님께 나아갈 때 내 자신은 비우고 참된 제물이신 그리스도를 들고 그분으로 채움 받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주님, 오늘도 나의 것을 비우며 또한 주님으로 채워지기 원합니다. 나를 비우기만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으로도 채워지기 원합니다. 주님으로 채워지기 위해 내가 비워지기 원합니다. 그리고 채워진 주님으로 다시 아버지께 오며 기쁘고 즐거움으로 주님을 찬양하기 원합니다. 나의 물질이나 시간이나 생각이나 주님을 통과함으로 아버지께서 받으실만한 것으로 재창조하여 주옵소서. 믿음 생활이 가장 가치있음을 알게 하소서.
페북 나눔:
우리는 먼저 자신을 비우고 주님으로 채움 받아야 합니다. 두 손 가득 주님으로 채워짐으로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제물을 들고 아버지 앞으로 옵니다. 참된 헌신에는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합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 받으실만한 것은 금도 은도 아니고 참된 제물이신 그리스도시고 또한 그 안에서 새롭게 창조된 우리들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전부를 원하십니다. (대상 2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