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은 사실 사람을 위한 것이다. 후에 솔로몬도 고백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보다 크시기 때문에 그 작은 성전에 거하실 수 없다 (왕상 8:27). 그래서 위대하신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성전이다. 하지만 동일한 이유로 다윗의 고백처럼 성전은 또한 하나님을 위한 것이다 (29:1). 예배는 우리의 기쁨이 목적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하기 때문이다. 주님의 영광이 드러날 때 우리의 기쁨은 따라온다. 다윗은 자신과 백성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수 있던 것 조차 주의 은혜임을 고백한다.
흥미로운 것은 다윗이 이렇게 선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뻐했지만 정작 그는 성전의 완성을 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아니, 그 건축의 시작을 보지도 못하고 죽었다. 성전 건축에 대해 그가 할 수 있던 유일한 것은 재료를 준비하는 것과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잘 건축할 수 있도록 구하는 것이었다 (19절). 하지만 그는 영감으로 성전의 모든 설계도 및 기구들에 대해 이상을 받았기 때문에 아직 건축은 시작도 되지 않았지만 그에게는 이미 완성된 것으로 취할 수 있었다.
히브리서 11장은 과거 믿음의 조상들의 신앙의 자태를 설명하며 그들이 '장막에 거하였'는데 (9절)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10절). 13-14절은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고 기록하며 오늘 다윗의 고백과 일치한다. 그들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더 나은 본향을 사모'했기 때문인데, '곧 하늘에 있는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음을 증언한다 (16절). 원어에는 '하늘에 있는 것'이라는 단어가, '하늘에 속한 heavenly 엪우라니우'로 되어 있는데 이 말은 '위치' 보다는 '차원'을 의미한다. 죽어서 가는 '천당'이라기 보다는 '영적인' 것을 의미한다. 믿음 생활이라는 것은 결국 이 '천상'의 어떠한 것을 미리 보며 사는 것이다. 그러한 약속이 우리에게 현재 이루어지지 않았더라도 다윗 처럼 미리 보며 그 영광을 누리며 주께 감사할 수 있다.
주님, 세상은 날로 발전하며 더욱 화려해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눈과 마음을 세상에 빼앗기지 않는 것이 믿음 생활임을 압니다. 주께서 영 안에서 주신 이 설계도를 우리 마음 속에 더욱 자세히 관찰하며 그 부요함을 누리게 하소서. 세상이 줄 수 없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받으시는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우리 마음에 가득 품게 하소서.
페북나눔:
후에 솔로몬도 고백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보다 크시기 때문에 그 작은 성전에 거하실 수 없고 (왕상 8:27) 따라서 성전은 사실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사람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동일한 이유로 다윗의 고백처럼 성전은 또한 하나님을 위한 것인데(29:1), 예배는 우리의 기쁨이 목적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영광이 드러날 때 우리의 기쁨은 따라오는데, 다윗은 자신과 백성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수 있던 것 조차 주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다윗은 성전 건축의 시작도 보지 못하고 죽었지만 그는 영감으로 성전의 모든 설계도 및 기구들에 대해 이상을 받았기 때문에 이미 완성된 것으로 취할 수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은 이에 대해 잘 설명하는데, 오늘 다윗의 고백과 일치하며, '하늘에 속한 heavenly 엪우라니우' 것을 바랐기 때문임을 증언합니다. 믿음 생활이라는 것은 결국 이 '천상'의 어떠한 것을 미리 보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한 약속이 우리에게 현재 이루어지지 않았더라도 다윗 처럼 미리 보며 그 영광을 누리며 주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주께서 영 안에서 주신 이 설계도를 우리 마음 속에 더욱 자세히 관찰하며 그 부요함을 누려야 합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받으시는 하나님의 어떠하심이 우리 마음에 가득하시기 기도합니다. (대상 29: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