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의 노래다. 모세라는 이름은 신약에 82번 그리고 구약에 731번 나오고, 이제껏 역대상을 통해 만났던 다윗의 이름은 신약에 55번, 그리고 구약에 921번 나온다. 구약을 모세와 엘리야라고는 하지만 정작 이 두 이름이 제일 많이 언급된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조차 구약에 162번 그리고 신약에 74번 정도다. 보통 시편은 다윗이 많이 썼지만 오늘 90편은 모세의 기도라고 설명되어 있다. 영원하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는 천 년조차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은데, 모든 것이 순간이다. 인생 역시 그 자체는 덧없는데, 그래서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12절)'라고 구한다.
어제 누가 페이스북에 자신이 이제 인생의 반을 살았는데, 이 후에 무엇이 있을까 라는 질문을 올렸다. 그러자 댓글이 몇개 달렸는데, '또 다른 반이 남았다'고 누가 답하자, '그러면 그 후에는?'이라고 다시 올렸다. 인생의 삶이 이렇다. 순식간에 주어진 삶의 반이 지나버리고 또 눈깜작할 사이에 그 나머지 반이 가버린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진 짦은 삶 가운데 세월을 아끼는 것이 필요하다. 다윗은 시 39:4-7절에 비슷한 노래를 했는데,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 (셀라)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라고 고백한다. 삶의 지혜는 주께서 나의 참 소망이심을 아는 것이다.
인생이 아무리 화려해도 결국은 마르는 풀처럼 덧없지만, 영원하신 분을 만날 때 그 분을 소망 삼으며 영원에 잇대어 산다. 영생은 하나님과 그 보내신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페북 나눔:
어제 누가 페이스북에 자신이 이제 인생의 반을 살았는데, 이 후에 무엇이 있을까 라는 질문을 올렸습니다. 이제 만으로 50인 나도 인생의 반 이상을 살았기 때문에 관심이 있어서 댓글을 보니 누가 '또 다른 반이 남았다'고 답했는데, 그에 대해 '그러면 그 후에는?' 이라는 댓글이 다시 달렸습니다. 인생이 이렇습니다. 주어진 삶의 반이 순식간에 지나버리고 또 눈깜작할 사이에 그 나머지 반도 가버립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진 짦은 삶 가운데 세월을 아끼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윗은 시 39:4-7절에 비슷한 노래를 했는데,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삶의 지혜는 주께서 나의 참 소망이심을 아는 것입니다. 인생이 아무리 화려해도 결국은 마르는 풀처럼 덧없지만, 영원하신 분을 만날 때 그 분을 소망 삼으며 영원에 잇대어 살 수 있습니다. 영생은 하나님과 그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 90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