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신약 여러 곳에서 인용되었고, 특별히 12절 처럼 마귀도 이용해 먹은 구절이 있을만큼 귀에 익은 시편이다.  흥미로운 것은 지존자이신 하나님을 의뢰하면 마치 그 어떤 어려움이나 위험도 당하지 않을 것 처럼 기록한 것인데, 그렇게만 이해하면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하나는 이 시를 읽는 오늘날에는 고대처럼 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고 따라서 삶 자체가 고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편리하며 안전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 자체는 고난과 환난의 연속임을 부인할 수 없다.

또 하나의 문제는 정말 주님을 의뢰하면 현실에서 언제나 완벽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인데, 어제 일어난 인도네시아의 그 큰 지진 중에도 주위 모든 건물은 다 무너졌지만 교회 건물 하나는 온전히 서 있는 것을 보도한 뉴스가 있었다.  불행중 다행이지만 이러한 사건 하나만 가지고 하나님께서 지키셨다고 하는 것은 석연치 않은 해석이다.  다른 교회 건물은 아마도 모두 무너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여겨 봐야할 것은 14절 이하인데, 14절은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고 기록한다.  내가 그를 건지리라고 하신 것은 우리가 어떤 위험 가운데 있음을 암시한다.  위험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건지시지만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데, 이것은 관계의 문제로,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안다고 기록하며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험에서 건지시기만 하지 않고 또한 우리를 높이신다고 말씀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항상 지키심에도 현실에서는 가끔 환난을 당할 때가 있다.  15절은 킹제임스가 더 잘 번역되어 있는데, ‘그가 나를 부르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고난중에 내가 그와 함께할 것이며, 내가 그를 구해 내고 그를 영화롭게 하리라고 되어 있다.  즉 시 50:15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와 비슷하다.  믿는 이들이라고 환난이 항상 비껴가지는 않는다.  그 환난의 날들을 줄이실 것이지만, 환난을 통과할 때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주님을 부르는 것이다.  그럴 때 주님께서는 우리를 구하시고 우리는 주님을 영화롭게 할 것이다.

주님, 안전하고 편안한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하루하루가 또한 도전이고 환난의 연속이며 이것이 실존임을 압니다.  주님을 부르지 않으면, 주님과 함께 하지 않으면, 그 자체가 진정한 환난이고 저주임을 다시 봅니다.  저를 다시 비우고 주님의 이름을 부름으로 주님으로 채워지기 원합니다.  우리에게 구원의 이름 예수를 주심을 감사합니다.

페북 나눔:

오늘 시편은 지존자이신 하나님을 의뢰하면 마치 그 어떤 어려움이나 위험도 당하지 않을 것 처럼 기록한 것 같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그래서 눈여겨 봐야할 것은 14절 이하인데, 14절에서 ‘내가 그를 건지리라’고 하신 것은 우리가 어떤 위험 가운데 있음을 암시합니다.  위험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건지시지만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데, 이것은 ‘관계’의 문제로,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안다고 기록하며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험에서 건지시기만 하지 않고 또한 우리를 높이신다고 말씀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항상 지키심에도 현실에서는 가끔 환난을 당할 때가 있는데, 15절은 ‘그가 나를 부르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고난중에 내가 그와 함께 할 것이며, 내가 그를 구해 내고 그를 영화롭게 하리라 (킹제임스)’고 하며 시 50:15와 비슷합니다.  믿는 이들이라고 환난이 항상 비껴가지는 않지만 주님께서는 그 날수를 줄이실 것이고, 따라서 환난을 통과할 때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주님을 부르는 것입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는 우리를 구하시고 우리는 주님을 영화롭게 할 것입니다.  주님을 부르지 않으면, 주님과 함께 하지 않으면, 그 자체가 진정한 환난이고 저주입니다.  우리 자신을 다시 비우고 주님의 이름을 부름으로 주님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우리에게 구원의 이름 예수를 주심을 감사합니다.  ( 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