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간 미주뉴스앤조이라는 인터넷 신문에서 창조과학을 과학이 아니라고 매도하고 진화론에 치우친 편향적 해석으로 하나님의 창조를 오해하는 글이 올라와서 미루고 미루던 창조에 대한 나의 견해를 페북에 올린다.
먼저 나는 창조과학과 관련된 사람도 아니고 그분들의 활동이 어느정도이며 얼마나 많은 분들이 그 학회에 있는지도 모르며, 그분들을 만나보지도 못했다. 단지 사이트에 잠간 들어가서 몇개 정도의 아티클을 보았고, 유튜브에 올려진 영상 몇개를 보았을 뿐이다.
창조에 대해 어릴 때는 세상 교육 시스템의 영향으로 많은 사람들처럼 상징이라고 이해했다. 중학생이던 어느 날 밤 골목에서 동네 형을 만났는데, 무섭지 않느냐는 나의 말에 그 형은 하나님을 믿으면 두려움이 없다고 대답했다. 나는 신기해서 창조의 기록도 믿느냐고 물었는데, 그 형은 그걸 안믿으면 뭘 믿냐고 대답했다. 당시 나보다 1-2살 더 많은 그 동네 형이 이해한 창조는 무엇이었는지 지금 돌아보면 궁금하지만, 적어도 지금 창조과학자들이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것과는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창세기 1장의 기록을 제대로 읽어 보지도 않고 세상에서 가르치는 소위 과학이라는 것에 입각해서 '진화론'이라는 증명되지 않은 단지 '론'에 불과한 것을 진리로 여겨서 그러한 왜곡된 관점으로 성경을 이해하려 들기 때문에 창조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먼저 문제가 되는 부분이 바로 창세기 1장 2절부터 31절 끝까지의 내용이다. 문자적인 창조를 믿지 않는 이들도 하나님을 믿는 기본적인 믿음으로 (이것도 창조에 대한 겸손한 태도를 가지지 않은 이상 기본적인 믿음인지도 모르겠다) 창세기 1장 1절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하지만 2절부터의 내용은 세상 과학에서 배운 것과는 순서가 다르다는 이유로 그냥 상징이라고 이해하려고 하는데, 한번 성경을 잘 읽어 보자.
(창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조'는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이루는 것이다. 그 작은 무엇이라도 존재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창조'가 아니다. 여기서는 '창조'이며 원어에서는 '하늘들과 땅을 창조하셨다'고 기록한다. 그 순서가 '하늘들' 먼저고 그 다음이 '땅'이다.
그런데 다음 절이 문제다.
(창 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갑자기 '땅'이 등장한다. 그리고 마치 13절의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은 땅이 창조된 다음에 등장하는 것 같다. 바로 이 부분을 주의해서 읽어야 한다. 하나님의 창조는 매우 완전하고 완벽해서 처음 창조는 아름답고 온전해야 한다. 이 원래 상태를 욥기 38장에서 찾을 수 있다.
(욥 38:2)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욥 38:3)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욥 38:4)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욥 38:5) 누가 그것의 도량법을 정하였는지, 누가 그 줄을 그것의 위에 띄웠는지 네가 아느냐
(욥 38:6) 그것의 주추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잇돌을 누가 놓았느냐
(욥 38:7) 그 때에 새벽 별들이 기뻐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뻐 소리를 질렀느니라
처음 창조는 너무 아름다워서 그 세상의 창조를 목도한 이미 창조된영적인 존재들은 기뻐 노래하고 소리 질렀다.
그런데 2절에서는 그런 모습을 찾지 못한다. 여기에서 2절부터의 내용이 '창조'가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이에 대해 창 2:4은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라고 하며 '창조하실 때'는 그 순서가 '하늘들과 땅'이었지만, '만드시던 날에'는 그 순서가 '땅과 하늘들'로 바뀌어 있다. 개역에서는 제대로 번역을 하지 못해서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고 아주 이상하게 번역을 했다. 처음 그 구절을 읽었을 때 '왜 이렇게 썼지?'라고 의아해 했다. 잘못된 번역이었다.
이 창조의 순서에 대해 스가랴에서도 분명히 나타나는데, 12:1에서는 '이스라엘에 관한 여호와의 경고의 말씀이라 여호와 곧 하늘을 펴시며 땅의 터를 세우시며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 이가 이르시되'라고 하며 '하늘을 (먼저) 펴시고 땅의 터를 세우'셨음을 말씀한다. 논리적으로도 공간을 먼저 만드셔야 지구나 별들을 놓으실 수 있는 얘기다. 이러한 기본적인 이해를 배제하고 창세기를 그냥 읽어 내려간다면 거치는 돌에 걸리게 된다.
이사야 51장 역시 '하늘을 펴고 땅의 기초를 정하고' (13절) '내가 하늘을 펴며 땅의 기초를 정하며' (16절) 라고 기록되었다.
그래서 이 2절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아름다웠던 처음 창조의 상태가 완전히 뒤바뀌어서 '땅' '혼돈' '공허' '흑암'이 있다. '무'가 아니라 이러한 부정적인 무언가가 있다. 더우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다. 즉 땅이 물에 완전히 뒤덮힌 상태이며 빛이 없이 어두운 상태다.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음을 암시한다.
무슨 일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이사야 14장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사 14:12)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사 14:13)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사 14:14)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사 14:15) 그러나 이제 네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 밑에 빠치우리로다
인간이 창조되기 이전 계명성이라 불리던 자가 하나님에 대해 반역을 일으켰다. 결론적으로 창조된 모든 우주는 물론이고 땅까지 심판 받았다. 즉 첫째 물심판이다. 노아의 홍수 이전에 물심판이 이미 있었다는 증거다. 그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창세기 9:11, 15절에 두번이나 하나님께서 다시는 물로 땅을 멸한 홍수가 없을 것을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처음에 이 구절들을 읽었을 때 매우 의아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시지? 누가 물어봤나? 그냥 불로 심판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면 되는데 왜 두번이나 이렇게 거듭 말씀하시지?'라고 궁금해했다. 하지만 노아의 홍수가 처음 홍수가 아니고 적어도 한번은 그 이전 창세기 1장 1절과 2절 사이에 있었다면 하나님의 이러한 언급은 이해가 된다.
물론 이러한 해석은 'gap theory'라고 이미 있는 theory이다. 그리고 그 자체만으로 보면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 간격을 매우 길게 해석하게 되면 오히려 세상 진화론을 옹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창세기 1장 1절과 2절의 간격은 그리 긴시간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3절에 빛이 있게 하신 날이 '저녁'으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즉 이미 창조의 아침이 있었고 저녁이 왔기 때문에 그 사이 시간은 지금의 하루가 아니라 해도 그리 긴 시간일 필요는 없다.
계속해서 날짜는 '저녁'으로 시작해서 '아침'이 되고 그 둘째 셋째 그 다음 날이 된다.
이렇게 이해하면 다음 구절들은 '무'에서 '유'로 창조한 것이 아니라 그냥 '있으라' 혹은 '만드사'라는 단어로 되어 있음을 비로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1절도 식물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이미 물에 잠겼던 땅 속에 존재하던 것들이 그냥 나온 것 (내라) 뿐이다.
(창 1:11)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창 1:12)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넷째 날에 비로서 우리가 볼 수 있는 하늘의 해 달 별들을 회복하신다.
즉 계속 언급되는 '몇 째날이니라'의 시간은 해 달 별들과 상관 없는 시간이기 때문에 지금 우리의 하루라고 이해하는 것은 무리다. 16절은 해와 달 역시 모두 '창조'가 아니라 '만드'셨음을 명확히 한다. (창 1:16) 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21-22, 25절은 생물들을 '그 종류대로 창조' 혹은 '만드'셨음을 말씀한다. 단백질이 진화한 것이 아니라 각 종류대로 일일이 창조하셨다.
(창 1:21) 하나님이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 1:25)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26절부터 비로서 남자와 여자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음을 기록한다. 인류는 그래서 mankind가 아니라 그 어떤 창조물과도 다른 godkind이다.
(창 1: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 1:29)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창 1: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창 1: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이렇게 심히 좋으셨다고 말씀하신 창조와 회복 혹은 재창조의 역사를 오해하는 무지한 인생들에게 하나님은 다시 말씀하신다.
(욥 38:2)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욥 38:3)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욥 38:4)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욥 38:5) 누가 그것의 도량법을 정하였는지, 누가 그 줄을 그것의 위에 띄웠는지 네가 아느냐
네가 아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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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이 마지막 질문 '네가 아느냐?'에 대해 데이빗조 집사님께서 '질책이 아님'을 말씀하셨다. 아담의 범죄 후에 하나님께서 '네가 어디 있느냐?' 라고 하신 질문이 '어디 숨었느냐? 찾아서 혼내 주겠다!' 라는 의미가 아니라, 죄를 짓고 숨어서 떨고 있는 아담에게 자신의 위치를 볼 수 있도록, 주님 앞에 나와 자백하도록 하시는 사랑과 초청의 질문이었다.
더 추가: 그리스도인 입니까? 그리스도인임을 확인하는 방법
페북 사용자들 중 정치성이 강한 사람들이 꽤 있는데, 그 중에 순수하게 한민족으로서 북한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포스팅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너무 좌익으로 가는 듯한 이들도 있다. 정말 ‘종북’이냐 아니냐에 대해 조갑제씨는 ‘종북세력이란 북한 지도자, 북한 3대 세습, 북한체제, 주체사상,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비판과 언급은 하지 못’하는 이들이라고 정의했다. 즉 정말 북한을 위하고 겨레를 위하는 이들이라면 위의 내용에 대해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이에 대해 나도 동의한다. 현재 북한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세습 체제 집단이고, 그들을 따르는 것이 바로 종북이다.
좋은 비교일지 모르지만 참된 그리스도인도 역시 그 기준이 있고 따르는 것이 있다. 소위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모두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것은 두 말 할 것 없지만, 만일 자신이 정말 그리스도인인지 확신이 없다면 세 가지 기본적인 것에 대해 확인하면 된다.
첫째,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가? 즉 매우 기본적인 질문이다. 둘째, 예수님을 주인으로 믿는가? 여기에 대해서는 그냥 믿는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예수님을 내 주인으로 모셨는지 알기 원한다면 ‘그 이름을 불러’ 보면 된다. ‘주여, 주 예수여~!’ 라고 내 입에서 나오면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을 얻’은 것이다. 한번만 아니고 계속 불러보라. 처음에는 약간 어색할지 몰라도 정말 믿음이 있다면 부를 수 있다. 부르는 이유는 주님께서 계심을 믿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지만 사단의 대표적인 궤계가 있는데, 바로 ‘창조’에 관한 것이다. 특히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를 사실이 아닌 그냥 상징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인데 진화론을 근거로 속인다. 만일 창조의 기록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아담의 범죄 또한 사실이 아닌 것이 되고, 따라서 사람들은 죄인이 아니게 된다. 죄인이 아니면 속죄나 구속도 필요없고 주님이 오실 필요도 없었으며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역시 의미가 없다. 그리스도 자체가 필요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창조를 그 어떤 모습으로든 부인한다면 실상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다. 현실을 보면 죄악이 관영한 세상이지만, ‘진화’ 즉 더 나아질거라는 근거없는 자신감을 주는 것이 바로 마귀의 궤계다. 그리스도의 사람은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사람인데, 그러한 사람은 위 세가지의 것에 대해 분명 ‘예’라고 대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