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연세가 70세 이상인 분들에 대해서 존경심이 든다.  그 이유는 역사적으로 매우 힘든 시절을 보내신 분들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 분들은 자신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한번씩 쓰다듬어 줘야한다고 생각해 본다.  일제시대, 6.25, 독재시대 등 정말 역사적으로 굵직한 시기들을 모두 경험하셨기 때문이다.  이 분들은 짚신, 고무신, 구두, 운동화 모두를 경험한 매우 독특한 세대이기도 하다.

70세 혹은 그 이상이 되어 21세기에 들어오셨고 이제 평균 수명 100세 혹은 그 이상을 예상한다는데, 이분들 중 믿는 분들은 과연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즉 나도 그 나이가 되면 어떤 삶을 추구해야 하는지 생각해 본다.  그 답을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갈렙의 예다.  갈렙은 80세가 넘었음에도 여호수아에게 가서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14:12)’ 라고 요구한다.  이미 80이 넘은 노인이지만 그에게 있어 눈을 감기전 까지 그의 삶의 목표는 오직 여호와께서 말씀하신것을 이루는 것이었다.  80은 커녕 50만 되어도 은퇴하고 싶고 몸을 조금이라도 덜 움직이고 싶어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겠지만, 아마도 여호와의 말씀을 평생 마음에 모시고 살아온 갈렙은 자신의 건강을 관리하는 것에도 철저했던 것 같다.  11절에는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게되면 삶이 짧음을 깨닫게 되는데, 목적 없이 살다가 후회하는 인생이 있는 반면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고전 15:10)’ 라고 감사함으로 고백하는 이들도 있다.   한국 문화 속에서 나이가 들면 대접받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 있지만 갈렙은 대접받는 것 등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다.  다만 그 삶 속에 오로지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언약을 추구했다.  나이 많은 분들에 기본적인 존경심은 있지만 간혹 가다 문제가 생기면 섬기는 목회자가 가서 무릎 꿇고 사과해야 마음이 풀리는 경우도 있다는 말을 듣는데, 이게 무슨 황당한 소리인가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그만큼 주님 뵐 날이 가까왔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갈렙 처럼 내 삶 속에서 아직도 정복되지 못한 산지는 어디인가에 주목해야 한다.  교회 청장년들이 어려워하는 것은 없는지, 여러가지 형편이나 상황때문에 믿음이 흔들리고 있지는 않은지, 학생들 중에 특별한 필요가 있는 손자 손녀 같은 이들은 없는지,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라는 갈렙의 믿음의 요구처럼 하나님께 요구해야 한다.

나는 교회를 비행기에 가끔 비교해서 생각한다.  비행기가 날 수 있는 이유는 두 가지 인데, 날개가 있고 엔진이 있기 때문이다.  엔진이 힘을 내는 청장년층이라면, 부력을 일으켜서 떠오르게 하는 것은 은빛 날개 즉 노년층이다.  만일 날개없이 엔진만 있는, 즉 노년층은 없고 청장년 층만 있는 교회라면 겉보기에는 좋을지도 모르지만 엔진만 있는 발사체는 미사일, 즉 살상무기가 되는 것 처럼 그리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사실 청장년층도 언젠가는 노년층이 되지 않겠는가?

비행기를 비행기로 보이게 하는 것은 날개다.  그 은빛 날개를 보면 마음이 좋아진다.  어른들의 은빛 머리는 그래서 날개를 연상시킨다.  이러한 분들이 청장년층과 잘 조화를 이룰 때 교회는 세상을 초월하여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고 그 본 사역을 감당할 수 있다.